「존슨」의 생애와 정치경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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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텍사스」의 시골 통나무집에서 자라 백악관의 주인이 됐던「존슨」은 세계적이라기보다는 순전히 미국적「거인」이었다.
소년시절 이발관의 구두닦이에서 시작하여「사우드·웨스트·스테이트」사범 대학을 줄곧 고학으로 졸업, 미국 정치의 전면에「클로스·업」되기까지의 그의 입지전적 성장 과정은 흔히 미국식 출세 담에서 유형을 찾아볼 수 있다.
「존슨」이 처음「워싱턴」정가에 발을 디딘 것은 29세 때「텍사스」의 보도에서 하원의원이 되면서부터였다. 이 때의「존슨」은 이미 하원의원의 비서로 활약한 전력을 살펴 의회초년생으로서는 능란한 정치솜씨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정치가「존슨」의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48년 상원에 진출하면서부터였다. 51년 42세의 나이로 민주당 상원 원내 부 총무로 선출된 뒤에 이어 53년에는 원내 총무로 선출됐다. 이는 미 상원 역사상 원내총무로서는 최연소 기록이었다.
의회 지도자로서의「존슨」의 능력은 민주당 정책위원장. 운영위원장, 민주당 상원총무 등 화려한 경력을 거쳤다.
60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지명에서「케네디」에게 패배한「존슨」온 그의「러닝·메이트」로 출마, 부통령 직을 맡았다. 이 때「존슨」으로서는 더 이상의 정치경력을 쌓을 수 없으리라는 게 중론이었다. 즉「케네디」의 그늘에 가려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경륜 책은 빛을 보지 못하고 부통령으로서 그의 정치생활이 종지부를 찍으리라는 추측이었다.
그러나 63년 11월22일「케네디」가「존슨」의 고향인「텍사스」의「댈러스」에서 총격을 받아 숨지며「존슨」시대가 펼쳐진다.
60년대「존슨」시대의 특징은 월남전으로 압축된다. 태평양 권으로의 공산 세력 저지를 목표로 한 소위「도미노」이론에 따라 월남에 엉거주춤하고 있던 미국으로 하여금 적극적인 확 전에 의 길을 닫게 한 장본인으로서 기록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의「존슨」은 미국의 일부에서「루스벨트」이래의『위대한 대통령』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는「존슨」이 재임기간 중 국내 치적 면에서 다른 대통령에 비해 훨씬 강력하고 효과적으로 인종 문제, 고용의 증대, 세제 개혁 등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특히 65년5월 박 대통령이 방미,「존슨」과의 정상 회담에서 한국군의 파월 문제 협의를 비롯, 한미 방위 조약에 다른 군·경원 문제를 협의했다.
66년 10월에는「존슨」이 한국을 공식 방문, 정상 회담에서 경제 계획의 지원 문제 등을 협의했다.
「존슨」대통령은 한국군 파월, 한-미 행정협제 체결 등 한-미 관계를 어느 때 보다 밀접한 혈맹 관계를 맺게 했다.
26세 대 현재의「버드」부인인「클라우다·알타·테일러」양과 결혼,「린다」와「루시」 두 딸을 두었다. 대통령 재임 중 두 딸을 출가시키고 68년 은퇴하여 고향「존슨시티」에서 말년을 보냈다. <김동수 기자>

<존슨 약력>
▲1908년8월27일「텍사스」주「스톤월」서 출생
▲30년「텍사스」주립「사우드 웨스트」사범대 졸업.「휴스턴」고교 교사
▲31년「리처드·클레버그」하원 의원 비서
▲34년「버드」여사와 결혼
▲37년 하원의원에 당선
▲41년 의원으로는 처음으로 군(해군) 복무
▲48년 상원 의원에 당선
▲51년 상원 민주당 원내 부 총무(최연소 기록)
▲55년 상원 민주당 원내총무(최연소 기록)
▲61년 부통령에 당선
▲63년「케네디」암살로 대통령 계승 취임
▲65년 36대 대통령 당선
▲66년 10월31일 한국 방문
▲69년 퇴임 후「텍사스」에서 기거
▲73년 1월31일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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