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기풍(棋風)과 성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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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16강전>
○·구리 9단 ●·안성준 5단

제4보(40~48)=지금 안성준 5단이 엄청난 강수로 도전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순한 얼굴에 가녀린 체구를 지녔지만 이런 안성준의 바둑을 보노라면 ‘사슴’은커녕 ‘표범’이나 ‘살쾡이’가 더 가깝다고 느껴집니다. 물론 바둑이 그렇다는 것이고 성품에선 따뜻함이 저절로 묻어나는 청년이죠. 두 살 위의 친형 안형준 4단도 비슷한데요. 역시 바둑은 사납고 사람은 따뜻한 전형입니다. 기풍과 성품은 비슷한 경우도 있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많지요. 프로이트 박사라면 이런 바둑에서 많은 단서를 얻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구리 9단은 스케일이 크지요. 당대 고수들 중에서도 바둑판을 넓게 쓰는 데는 구리 따라갈 사람 찾기 힘듭니다. 기풍과 성품이 비슷한 편이죠. 그는 안성준의 칼칼한 도전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40으로 조용히 밀었습니다. ‘참고도1’ 백1, 3으로 뚫은 다음 5로 넘는다면 골치 아픈 싸움이 되겠죠. 아마도 우상 쪽 흑은 살려내기 힘들 겁니다. 그러나 구리는 이곳 몇 점 대신 더 큰 것을 기대하며 인내력을 발휘했습니다. 41을 허용하더라도 42로 공격한다면 이곳 흑이 괴롭지 않으냐 하는 것이지요. 쉽게 살 수 없다면 대가를 내놓아야 하는데 그게 우상 쪽 몇 점보다 더 낫지 않겠느냐,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42 대신 ‘참고도2’ 백1로 압박하는 것은 흑2를 당해 오히려 맛이 나빠집니다. A의 반격도 있어서 엷은 거죠. 47로 조심조심 삶을 구할 때 48이 쿵 하고 떨어졌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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