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공해와 정치참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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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다. 인간들이 모여서 이룩하는 사회 속에 의식주의 수요를 충족하면서 살아 나가는 것이 인간존재의 기본양식이다. 인간이 사회를 이룩하고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한, 정치는 공동생활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정치동물>
근대이전에 있어서 정치는 자연현상의 일부로 간주되었고, 근대 이후에 있어서 정치는 사회현상의 일부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관의 변천여하를 부문하고 인간이 항상 『정치적 동물』이었다는 사정에는 고금을 통해 하등의 변함이 없다. 따라서 만약에 인간에게 비정치적인 동물이 되기를 요구한다고 하면 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시민혁명으로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민주정치로 국민국가의 내실이 확충되는 과정은 국가성원의 다수가 정치의 객체에서 주체로 옮겨지는 과정이었다. 국민국가의 궁극적인 이상은 국민 모두가 주권자로서 국가를 움직이는 주인이 되는데 있다. 그리고 민주정치의 기본목표는 『다스림을 받는 자가 다스린다』는 치자-피치자의 자동성경리를 모든 정치과정에 있어서 생동하게 관철시켜 나가는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 이러한 목표가 충분히 달성되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국가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 인류가 명실겸전한 국민국가의 구현을 구원의 이상으로 추구하고, 완전한 민주주의의 성취를 일종의 신화로 간주치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내용 면에서 볼때, 민주주의는 국가성원사이에 평등한 권리를 확립하고 정치의 기획과 운영에 대한 성원의 고른 참가를 통해 평등한 복지를 실현해 나가는데 있다. 평등은 분명히 민주주의의 혼이다. 성별이나 신분·계급의 차, 종교와 인종이 차를 넘어 일보일보, 이 평등을 실현하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확대이다. 그리고 단순히 형식적인 법률상의 평등에서 실질적인 경제상·사회상 평등으로 접근해 나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충실이다. 이 확대와 충실이 아울러 민주주의의 발전을 형성한다.
건국 후 4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우리는 민주주의를 발전시켜 나감에 있어 허다한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시대환경에 따라 우리의 민주주의는 명멸을 거듭했고, 우리 국민은 희망과 절망이, 용기와 좌절이 교차하는 가운데 꾸준히 자유와 평등을 추구해왔다.

<민주주의>
오늘날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장래에 대해서는 밝은 낙관적 전망을 가진 국민도 있고, 정반대로 어두운 비관적 전망을 가지고 있는 국민도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보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고 및 생활의 방식이요, 정치적인 제도임은 누구도 시인을 아끼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5천만 동포의 숙원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 민주주의방식에 의거해서, 또 민주주의를 이상으로 합으로써만 성취될 수 있음도 가릴 수 없는 진실이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실험한 지난 25년이란 기간은 그 보험의 최종적인 결과를 암기에는 너무도 짧다. 여기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현재 및 장래에 대해서 어두운 전망을 가진 국민도 최종 평가를 삼가고 인내 깊은 노력을 지속해야할 근본 이유가 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물질적인 작품이나 사상·제도가 인간의 후생에 도움을 주지 않고 거꾸로 인간에게 대립하고 인간을 못살게 굴고 인간을 해치는 것을 가리켜 일반적으로 공해라고 한다.
과학·기술의 부단한 발전으로 미증유의 생산력과 물질적 번영을 향유하게된 현재의 인류는 산업공해라는 이름의 엄청난 인간소외현상에 부닥쳐 전례없이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 한국 역시 그 예외가 아닐뿐더러 우리나라는 국가공업화, 사회근대화의 길을 의욕적으로 달리고 있는 탓으로 생산력이나 생활수준의 향상에 비례해서 공해와 이에 마르는 인간소외의 정도도 더 심각해 가고 있다.
최근 수년내 우리 사회에서 인문소외현상에 대한 자각은 각종공해의 심각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물론 공해가 인간소외를 가져오게 한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소외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하고 있음은 가릴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공해문제의 일국면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 바로 정치공해이다.

<정치공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 국가의 번영과 발전, 사회의 안전과 안정을 위해서 만들어 놓았던 각종제도, 예컨대 선거·정당정치·권력분립제 등이 제대로 기능해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비 능률과 낭비와 분열과 부정부패를 가져왔으므로 정치공해가 거론되기 시작하였다. 이 점 위정자도 국민대중도 엄중한 자기반생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만약에 정치공해를 이유로 정치- 특히 민주정치를 덮어놓고 위험시·죄악시한다고 하면 정권과 국민은 점차 크게 유리되기 마련이다. 정치의 최고 목표는 정의의 질서를 구현하는데 있다. 그러나 현실의 정치는 대·소 권력의 쟁탈을 둘러싸고 권모술수가 개입하지 앉을 수 없는 탓으로 더럽다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원내가 선한 목적을 추구해야할 정치가 실제로는 필요악으로 간주되는 소이이다. 정치가 선과 악의 두 가지 면을 아울러 갖추게 됨은 불가피한 일이다.
위에 말한 정치공해는 주로 정치의 추한 이의 구체적인 발현이다. 따라서 만약 이러한 정치공해를 이유로 국민이 의식적으로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를 기피하게 된다고 하면, 정치의 선한 면도 나타나기 어렵게 된다. 우리 국민은 모든 정치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정치공해를 줄이고 국리민복을 촉구하는 길임을 자각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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