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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델라 보내는 길 각국 정상들이 앞다퉈 날아간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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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기쁠 때 일은 기억하지 못해도 슬플 때 일은 웬만해선 잊지 않는다”는 속담 때문일까? 10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 영결식에 외국 정상이 100명 가까이 모였다. 현직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물론 지미 카터(89·민주), 빌 클린턴(67·민주), 조지 W 부시(67·공화) 등 운신 가능한 전직 대통령이 모두 나선 미국이 가장 눈에 띈다. 외국의 전 대통령에 대해 전·현직 구분 없이 초당적인 조문외교에 나선 것이다. 지난 4월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장례식에 오바마가 불참했던 것과 비교된다.

 영국은 총리와 찰스 왕세자가, 프랑스와 독일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각각 참석했다. 의원내각제인 캐나다에선 전·현직 총리들이 함께 출동했다. 어느 정상회의 때보다 많은 VIP가 몰렸다. 처리할 현안이 한둘이 아닌 건 물론이고 분 단위로 일정을 짜는 분들인 만큼 조문을 위해 외교적 결례를 무릅쓰고 취소 또는 연기해야 했을 중요한 약속도 수두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급작스러운 외국 방문에 따른 경호 문제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왜 만사를 제쳐놓고 앞다퉈 먼 길을 날아갔을까? 가장 큰 이유로 당연히 만델라의 위대성을 꼽을 수 있겠다. 비인간적인 인종차별에 대한 투쟁과 용서·화합의 살아있는 역사를 동시에 이룬 위대한 영혼에게 존경을 나타내기 위해서일 것이다. 물론 자원대국 남아공과 가능성의 대륙 아프리카와 관련한 국익도 한몫했을 걸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거기에 더해 동일한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의 정상들끼리 일종의 ‘가치동맹’ 총회를 한 건 아닐까? 만델라가 추구한 인권보장·차별철폐의 자유롭고 정의로운 세계를 만드는 데 동의하는 민주국가의 정상들이 모여 서로 하나임을 확인하고 관계를 다지는 의미도 상당히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참석자 대부분이 이런 가치를 추구하는 자유국가의 정상이고 그 반대 측은 드물다는 사실이 근거다.

 게다가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자신감과 책임감을 앞세워 전 세계가 가는 방향을 주도하고 어젠다를 설정해온 국제사회의 주역이다. 이들이 다른 정상회의에서 만나면 서로 염화시중의 미소를 띠며 이심전심으로 이번 조문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떠올리고 가치동맹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다지지 않을까?

 한국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보내 조문외교에 합류했다. 하지만 만일 박근혜 대통령이 그 자리에 함께했더라면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대한민국의 국격과 국제적인 위상이 더욱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었고 우선순위에 따라 의사결정을 했겠지만 말이다. 이젠 가치외교에도 눈을 돌릴 때가 아닐까.

채인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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