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 잃은 「철권충북」의 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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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7년 동안 남의 집 빈 창고를 빌어 11번이나 옮겨가면서 국제선수 양성에만 몰두하던 「복싱」사범이 마지막 빌어 쓰던 창고에서마저 밀려나 도장을 잃게되자 그를 뒤따르던 국가대표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져가고 있다.
청주에는 국제선수를 배출하는 번지 없는 체육관이 있다. 왕년의 철권 송순천 사범(38·미호중 체육교사)이 경영하는 태성체육관이다.
한곳에 자리잡지 못하고 이곳 저곳 빈 창고를 찾아 옮겨야 하기에 번지가 있을 수 없다.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을 나온 송씨는 지난 66년 아무 연고도 없는 청주에 발을 디뎠다.
당시 충북지사였던 김존영씨가 「복싱」 불모지인 충북을 개발해달란 게 인연이 되었다. 제16회 「멜버른·올림픽」대회 때 「복싱·밴텀」급에서 동양 최초로 은「메달」을 딴 송씨는 국내인기가 절정에 달했었다.
1백56전승에 99KO승의 기록을 갖고 있는 송씨는 지난 7년 동안 청주에서 3천5백명의 체육인을 길러냈다.
세계무대를 향해 성장하고있는 「라이트·미들」급 임재근 선수(22)와 제2회 「아시아」 선수권대회 우승자인 정영대, 20회 전국학생선수권대회 고등부 우승자 박문옥은 송씨가 길러낸 수제자들. 송씨는 자신이 못다 한 세계제패의 꿈을 후배들에게 물려줄 결심을 했다.
그 집념 11년만인 지난해 충북대학 1년이던 정군이 국제무대에 출전할 자격을 땄을 때 생애에 가장 큰 보람을 느꼈고 그 뒤 「아시아」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 난생처음으로 감격의 눈시울을 적셨다고 했다.
청주에 오던 해 10월 송씨는 청주시 남주동에 20평짜리 빈 창고를 빌어 체육관을 차렸다.
관원을 모집하고 막 훈련에 들어간 3개월만에 창고를 비워달라는 집주인의 독촉이었다.
이 창고 저 창고로 옮기기 열 번, 옮기면 또 비워달라는 성화 속에 나날을 보내다시피 했다.
대회 때마다 선수출전비 염출마저 안돼 애태우기 수십 차례, 부인 신정자씨(35)가 급전을 들려주면 돌아와 봉급 타다 갚기가 일과처럼 돼왔다.
이를 보다 못한 충북「복싱」연맹회장 정태완씨와 선수들이 공동부담을 해줘 큰짐은 덜었지만 지난 5일 부산에서 폐막된 「아시아」 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하고 돌아온 임재근 군 등 1백50여 선수들이 뿔뿔이 흩어지다시피 된 쓰라림을 안았다.
지난해부터 도장으로 쓰던 청주시 우암동 이문수씨 창고가 팔려 체육도장을 잃고 만 것.
송씨와 임군은 지난 한달 동안 빈 창고를 찾아 시내를 헤매었으나 허사였다.
도장으로 쓸만한 빈 창고는 있지만 70∼80만원의 여유가 없어 애태우고 있다. 그러나 송 씨는 학교강당을 빌어서라도 임군 등 선수가 국제무대를 제패하는 날까지 뒷바라지하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했다. <청주=이민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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