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한국출판학회상을 타개된 최정호씨<인쇄자형설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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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출판의 기본이 되는 활자개량에 평생을 바친 한글인쇄자형 설계가 최정호씨 (56)가 제1회 한국출판학회상을 타게됐다.
아름다운 자체로 독서에 즐거움을 제공해 왔지만 아직 일반에 알려져 있지 않은 숨은 공로자인 그는 취미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됐고 그 일이 인쇄·출판업계에 도움이 되고 또 유용하게 쓰여진다면 그것만으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제1고보를 나온 후 상업미술 중 특히 서체에 관심을 두었던 그는 5년간 도일수업을 하고 일제 때는 한자의 자형도안, 해방 후부터는 한글의 자형구성·점·획을 조형하는데 정열을 쏟았다.
해방직후의 한글활자는 고 박경서씨가 10년 동안 몰래 손으로 조각한 수각종자가 고작이었고 또 서체도 정돈되지 못했었다. 한자는 중국·일본 등지에서 많이 개발되었지만 그에 따를만한 한글활자는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했다.
현재 그가 만든 한글활자는 국내에서 발행되는 모든 서적의 80%에 쓰여지고 있다. 그러나 한글활자는 크게 나누어 명조체와 「고딕」체의 2중이며 변형체 4종씩을 합쳐도 8공밖에 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서구에서 개발된 「로마」자는 서체가 6백종이나 돼 같은 「페이지」에 여러 종의 서체를 씀으로써 읽기 편하고 다양한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26자의 「로마」자 보다 더 이상적이라는 24자로 된 한글이지만 현행 모아쓰기로는 한 서체를 2천개나 만들어야하는데 문제가 있다.
그는 일부에서 연구되고 있는 한글의 풀어쓰기를 사용하면 기계화에는 편리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계 때문에 좋은 한글을 희생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하고 한글에 기계가 따라오도록 해야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요즘 도서의 7할이 횡서를 쓰고 있어 제대로 하자면 종서용과 횡서용이 따로 있어야 하지만 잘못 혼동될까봐 한가지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활자는 어느 활자의 상하좌우에 끼이더라도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가독성이 좋은 체계미를 갖춰야 하는 것이 욧점이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끝맺지 못한 한글의 횡서체 개발을 후진들에게 당부하고 또 자신도 필력이 다할 때까지는 한글의 아름다움을 가꾸는데 정열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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