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국제 정치외 도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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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최근 급변하는 국제정치를 볼 때 착잡한 감회를 갖지 않을 수 없다. 일본과 중공의 관계정상화는 즉각적으로 일본의 대만과의 국교 단절을 가져왔다. 적어도 전후 4반세기동안 중화민국을「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인정하면서 국제무대에서 손을 잡고 온 양국간의 관계를 고려할 때 과연 국제정치 무대상의 도덕관념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역사적으로 국제법상 정의가 무엇이냐는 의문에 거듭 사로잡히게 된다.

<국제 정치상 도덕의 위치>
국제법의 장소는 국제사회이며 국제정치는 국제사회에서 일어나는 정치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본다면 국제정치상 도덕이 점하는 비중은 매우 미약했으며 국가간의 신의란 현실적 이해관계 앞에서 너무나 무력했던 것이 사실이다.
제l차 세계 대전은 독일이「벨기에」를 침공함으로써 시작되었다. 당시「벨기에』의 중립을 5대국간에 보장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은「벨기에」를 침공했던 것이다. 또 1938년에 독·소간에는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어 있었으나 그 조약 체결로부터 1년도 경과하기 전에 양국간에 전쟁이 벌어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역사적 사실은 국제 정치상 도의라는 것이 얼마나 경시되어 왔느냐를 말해주는 산 증거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국제 정치의 큰 흐름을 볼 때 희망적인 관측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루소」나「칸트」는 세계의 영구 평화를 신봉한 대표적 인물이었지만 그들은 국제무대에서도 정의의 질서가 실현되어야하며 또 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미국의「윌슨」 대통령은 제1차대전후 「베르사유」회담에서 억압 없는 사회, 전쟁 없는 사회, 그리고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국제사회를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국제연맹은 미완성 작품이긴 했으나 그 와 같은 이상주의의 발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베르사유」회담의 뜻>
오늘날의 국제연합도「월슨」의 이상주의와 무관한 것이 아니며「유엔」이 국제 도의의 확립과 실천, 그리고 국제사회의 규율 있는 법질서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사실 그 자체가 인류의 도덕적 전진이라고 생각된다. 이른바 약육강식의「정글」법칙은 차차 국제사회에서도 퇴색해 가고 있으며 점차 법질서의 확립이란 방향을 지향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버트란드·러셀」이 말한 바와 같이 국제관계에 있어 국가의 주권을 제한하는 문제는 점차 현실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으며 초주권적 권능을 가진 국제사회의 탄생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처럼 국제정치와 도의의 상관관계에 있어서는 이상주의의 입장과 현실주의적 입장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정치 사상가들의 경향은 두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그 하나는「프란턴·아키더스」·「로크」·「제퍼슨」·「그린」·「월슨」·「러셀」등의 문영을 통하여 볼 수 있는바와 같은 이상론을 지적할 수 있다.
그들은 국제사회에서의 이성을 신봉하고 세계평화를 추구하며 정의의 질서를 확립하는 것만이 인류의 지상목표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전쟁이란 일시적인 악의 발로에 지나지 않으며 영구히 전쟁을 말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반면에「마키야벨리」·「헤겔」·「루소」·「마르크스」·「레닌」등 현실주의적 정치사상가도 있었다.「루소」를 이 범주에 넣는 것은「일반의지」라는 개념아래 정치를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소지를 허용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서양의 정치사상 전통에서는 분명히 정통적인 계보가 못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일·중공 수교와 대만 문제>
이들은 국제 정치의 본질을 도덕정의 및 이성 등으로 보지 않았고 국가이익에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이성과 정의의 실현이라는 전제 위서 고찰한다면 언제나 실망하고 개탄하는 결과를 되풀이 체험했으나 국가이익이란 전제로서 고찰한다면 모든 문제가 되려 명료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의 정세 속에서 가장 주목되는 사건으로 일본과 중공간의 관계 개선과 일본의 대만 문제처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되어야 할 것인가. 미국과 일본은 2차 대전 중 서로 교전국이었고 미국과 중국은 동맹국가였다. 미국은 제2차대전후 일본의 재무장을 막기 위해서 헌법·군정 등 모든 방법을 통해서 견제하려고 노력했다.
한편 일본은 미국의 점령을 통하여, 또한 미국의 핵 우산 하에 재건과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경제대국으로 세계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전중 내각은 출범한지 2개월만에 북방 진출을 시도함으로써 전후 미국 일변도의 종속적 외교에서부터 소위「자주 외교」를 시작한 셈이다. 일·중 수교는 세계 정치의 대세라고 보겠으나, 문제는 일본의 대 대만정책의 자세에 있다고 하겠다. 구체적으로는 그 시기와 방법에 도의적 문제가 없지 않은 것이다.
일본은 이른바「일화조약」을 하루아침에 파기했는데 이것이 과연「아시아」의 평화와 국제사회의 질서 확립에 기여할 수 있겠느냐하는 의문인 것이다.

<국제사회의 「정글」법칙>
물론 국제 정치의 현실성에 대해선 냉정한 판단과 평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교통수단과 과학의 발달로 말미암아 세계는 점검 좁아지고 있으며 경제협력 공해문제 과학기술의 개발 등 다방면에 걸쳐 국제협조가 필요하게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점에서 국제 도덕의 긍정적 의의를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국제정치를 역사의 여러 단면을 통해서만 보지 말고 긴 안목으로 내다볼 때 인류생존의 이념을 중심으로 차츰 협조적 관계를 맺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모든 나라가 국가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성명서나 공동 선언 등 대외적으로는 반드시 정의와 이성을 앞세우고 있다. 지난번 일·중공선언에도「유엔」의 원칙을 준수한다고 못박고 있다. 그러므로 약육강식의 무법적인 국제사회도 차츰 질서와 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전환되리라는 희망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일본의 대만문제 처리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앞으로 언젠가는 명철한 역사적 평가를 받게되리라고 생각된다.
각도를 달리하여 이 문제를 고찰할 때, 국내적으로 개인의 행동은 국내법에 의해서 규제되고 있으나, 국제사회에서는 약육강식의「정글」법칙이 적용되어왔음을 우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국제법도 현실적으로는 법적 통제력을 지니지 못했으며 또 현실도 그렇다.
그러나 눈부신 과학의 발달과「매스·미디어」의 급격한 발달은 국제적인 여론의 힘을 차츰 증대시키고 있다. 공산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도 신속히 자유세계에 전달되고 있다. 그 결과56년의「헝가리」폭동과 68년의「체코」반란 등 사태에 있어서도 국제 여론의 힘은 소련의 무자비한 탄압에 큰 제동적 역할을 했던 것이다. 만일 여론의 힘이 없었더라면 더 많은 희생자를 냈을 것이다.
국제사회에 있어서도 강대국이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범위가 차츰 축소되어가고 있음을 과소평가 하지 말아야 한다.

<현실 추구에 성급한 일본>
그러나 일본의 대만문제 처리의 경우는 과연 자신이 살기 위해서 그와 같이 성급한 방법으로 남을 희생시킬 필요가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나는 것이며 역학관계로 보더라도 중공은 일본과 수교해야할 필요성이 많았지만 일본은 오히려 행동면에서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대만 문제를 냉철하게 다룸으로써 실리를 취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동남아 여러 나라의 반응과 불신을 사서 장기적으로는 여러모로 손해를 입게될 공산이 큰 것이다. 대조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1차 대전 때 독일이「벨기에」를 침공했을 때「로이드·조지」영 수상이 취한 태도이다.
그는 5대국 조약을 짓밟은 독일의 배신 행위를 맹렬히 규탄하고 국제사회에서 폭력이 지배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영국은 중립 보장국의 한 나라로서 그 의무를 완수하기 위하여 참전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물론 영국의 참전 결정에는 전통적인 대륙정책 즉 독·불간의 세력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의도가 있었던 것이지만 지도자의 그 같은 도덕적 결정은「나치스」독일을 응징하는데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생물적인 것, 이성적인 것, 그리고 감정적인 것 등을 나누어서 생각할 수가 있다. 만일 개인을 평가할 때 어느 한 측면에만 역점을 둔다면 다른 속성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명분위주였던 우리외교>
역사를 보는 관점도. 어느 측면에 치중하느냐에 따라서 때로는 이성이 지배하는 정의의 현장이라고 볼 수도 있고 또 비이성적인 면만 강조한다면 그 반관의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런데 역사상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인간의 이성을 신봉하고 역사의 심판을 끈질기게 믿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지식인의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라고 조소할 권리는 정치상들에게 없는 것이다.
우리들 자신의 문제로 돌아가 이조 때부터 정치의 명분론에 치우쳐 실리면은 등한시 한 사실을 반성해야할 것이다. 해방 후 미국에 대한 우리들의 태도는 수혜 의식이 크게 작용해 왔다.
대미 관계·대일관 등에 있어서 명분과 감성의 차원에 머물러 있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남북회담에 대한 반응도 감정적 측면이 강한 인상을 씻을 수 없다. 우리는 앞으로 점점 더 복잡해질 국제 관계에 철저해 나가기 위해서 국가 이익을 살리며 동시에 국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현실파 이념의 조화를 얻어야할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 정책은 다분히 실리보다도 명분위주의 것이었다. 4·19후는 조금씩 달라져서 중립국 외교 그리고 비 적성 공산국가 외교 등 폭을 넓히면서 실리 외교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우리의 의식구조는 실리와 명분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일본이 북한과 접근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해 다분히 감상적인 차원에서 배신행위라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인류 역사의 큰 흐름으로>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냉철해야하며 일본의 의도와 방법이 무엇인가 빈틈없이 검토하여 대응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외교는 일방통행이 아니고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는 국제정치의 본질을 파악하면서 현실을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강조해야 할 것은 분단된 국가의 이익은 모든면에서 양자가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는 현실이다.
특히 북한은 한 계급만 옹호하는 정책을 내세는 반면, 우리는 계급을 초월한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다음으로 국제사회에, 있어서는「로이드·조지」가 말한 바와 같이『영원한 적도 없고, 또 영원한 우방도 없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입장에서 일본의 대외정책을 볼 때 이른바 「원교 근공」이 일본외교의 본질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한편 반공개념의 재정립도 필요하다. 남북 대결에 있어서 투철한 반공 사상은 우리들의 결단력과 단결력을 강화해주는 정신적 지주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 무대에서도 신축성을 가져야 할 것이며 국가 이익과 국제 협력과의 조화를 끊임없이 모색해야할 것이다.
과거 우리는 명분일변도의 대외 의식 속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나 현재는 실리 추구와 국가이익에 대하여 형식론 적인 주장이 지나치게 강조되고 있다. 인류 역사의 큰 흐름이 인간회복 정의의 실현 등 높은 도덕적 가치를 향한 것임을 확신하면서 올바른 우리의 진로를 정립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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