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1)제26화 경무대 사계여록 내가 아는 이 박사(16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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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조각과 인사정책>
조각은 일시에 마쳐지지 못하고 몇 부처씩 결정되어갔다. 첫 조각이 끝나자 정파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미주파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느니 근위부대 형성이니 하는 일부 비난이 상당기간까지도 계속됐다.
그러나 난마와 같은 정국을 배려해서 잘 짜여진 것이라고 나는 그 때도 지금도 믿고있다.
그런데도 국회에선 반 이 박사 기류가 감돌았고 이것은 한민당의 불만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조각을 끝내고 첫 국무회의를 소집하기전 이 박사는 나를 불러 들였다.
이제 각료인선도 끝나 나라살림의 틀도 잡혔으니 앞으로의 일에 대해 얘기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는 크게 두 가지에다 중점을 두고 있었다. 하나는 부정이 고개를 들고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당파싸움에 대한 우려였다.
그는 이조 5백년사를 환기시켰다. 정치는 본래 인간의 선을 사회에 구현하고 실천하는 것인데 이조 하에선 당파싸움과 부정이 정치의 뜻을 혼미하게 하고 역사를 어지럽혔다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신생한국은 역사의 전철을 밟지 말고 부정한 일이 나타나는가를 경계하고, 한편으로는 당쟁의 요소를 제거하는 데에 힘써야 한다고 했다.
나는 이 박사의 이런 생각을 이범석 총리에게 전해 내각으로서는 인사문제를 포함한 국정처리에서의 원칙을 정해야한다고 말했다. 특히 정실인사와 뇌물수수는 엄단키로 했다.
이범석 총리는 이런 점에 대해 아주 신중하고 충직했다.
그는 족청을 뒤에 업고 있었으나 족청 사람들을 우대하려하지 않았다.
나도 친지들이 많아 인사청탁을 무던히 시달림을 받았지만 정실인사를 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첫 내각의 결의였다.
그러나 이 박사의 인사정책의 최초의 실패는 신성모를 내각에 기용한 일이었다. 그가 어떠한 경로로 이 박사에게 「어필」하게 되었는지 지금까지도 나에겐 수수께끼이다.
그는 출신 그 자체에 있어 수수께끼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내가 「뉴요크」에 있을 때에 몇 번 나타났었다. 영국의 석탄 배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교포사회에서는 선장으로 통했다. 그 이상으로 그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는 화물선을 타고 상해를 다니면서 임정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있다. 그 때 그는 신숙씨와 더불어 이 박사를 축출 제거하는데 주동이 되었다.
그가 이 박사를 암살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다는 임정요인의 말도 있었다. 임정 안에 창조파니 개조파니 하는 좌우싸움이 벌어졌을 때 신성모가 큰 몫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임정에 파고 들어간 것도 하나의 의문이다. 그는 고아처럼 성장하여 총독부의 일인관리 손으로 공부했다는 설이 있다. 그가 총독부의 경무국장 환산과 친히 지냈고, 환산의 비밀후원으로 상해임정에 드나들었다는 소문이 그저 그를 헐뜯기 위해서 지어낸 말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듯 했다. 그가 광복투쟁을 한 일이 없고 국방장관이나 총리를 할만한 경륜 있는 인물이 못됨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 당시 신성모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은 것은 그가 김효석이나 이기붕·서상호 등과 같이 소위 8·8구락부「멤버」였다는 것뿐이다.
6·25는 신성모가 아니었어도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단 사흘도 못되어 서울을 빼앗기고 한강대교를 끊은 비극적 죄악,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 수많은 국민의 생명을 잃게 하고 혹은 적 치하에서 고통을 겪게 한 것은 신성모가 져야할 책임이었다.
그러한 신성모를 이 박사는 무엇을 근거로 하여 국가의 기둥이며 울타리인 국방을 맡긴 것일까.
이 박사에 듣기 좋은 것만 말하고, 그저 잘돼가고 있다라고 호언해서 이 박사로 하여금 국정의 현실에서 어둡게 한 최초의 인물은 신성모의 주변에서부터가 아닐까 생각된다. 건국 초의 내정은 밝고 발랄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이 박사를 속인다는 생각을 어떤 국무위원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보람을 느끼고 밤을 지새우며 공부하고 일했다. 그야말로 새로운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명랑했고 불신이란건 누구의 표정에도 없었다. 이박사도 그러한 정부 안의 시원한 바람이 만족스럽다고 자주 말했고, 무엇을 건의하든 안 된다고 하질 않았다.
그러한 국정이 날이 흐르면서 차차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고 모함과 시기가 늘어가는 풍토로 오염돼갔다. <계속> [제자 윤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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