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불신에 예상은 했지만…" 침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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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새 정부의 이른바 검찰 인사개혁안을 놓고 빚어진 검찰파동이 9일 김각영 검찰총장의 사퇴 표명으로 이어지자 검찰 간부들은 침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을 지켜본 뒤 늦게까지 대검 청사를 지키던 일부 직원들은 "결국 이렇게 되는 거냐"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金총장의 사퇴는 대통령과 평검사의 토론회에서 盧대통령이 "기존 검찰 수뇌부를 믿지 않는다"고 말할 때부터 예상됐다.

토론 직후 검사들 사이에서는 盧대통령은 기존의 인사안을 밀어붙일 수 있는 명분을 갖고 평검사들은 자신의 입장을 국민과 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소득을 올렸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金총장을 비롯한 기존 검찰 수뇌부에게는 '청산 대상'이라는 딱지만이 붙었을 뿐이라는 지적이었다.

급박한 대검=휴일인데도 모두 출근했던 金총장을 비롯한 대검 간부들은 토론이 끝나자 8층 총장실에서 한시간 가량 긴급 회의를 가졌다. 이자리에서 검사장들은 盧대통령이 "과거에 하루라도 덜 일한 사람을 높은 자리에 올리고 싶다"는 등 기존 수뇌부를 불신하는 말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사장은 "신뢰받지 못하는 검찰 간부를 왜 만나러 왔느냐" 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학재 차장검사는 기자들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대검 청사를 떠났다. 오후 6시가 넘어 검사장급 간부들이 청사를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金총장이 총장 집무실을 계속 지키면서 중대 결심설이 나돌았다.

연설문에는 일가견이 있는 김원치 형사부장과 이종백 기획조정부장이 장시간 만나면서 金총장이 사퇴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그러나 국민수 대검 공보관은 "용퇴 이야기는 없다"고 사퇴론을 일축했다.

그러나 오후 7시40분쯤 퇴근했던 검사장들이 다시 청사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분위기가 긴박하게 돌아갔다. 오후 8시쯤 총장실에서 나온 鞠공보관은 "기자들을 더 부르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해 金총장의 사퇴 의사를 전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후배들은 대통령에게 결례를 하고 법무장관도 총장을 공격하니 金총장이 설 땅이 없어졌다"고 밝혔다.

엇갈린 토론회 반응=한편 金총장의 사퇴를 몰고 온 토론회에 대한 평가는 직급에 따라 다소 엇갈렸다. 평검사들은 검찰 중립에 대한 의지와 자신들의 고충을 전달한 것에 큰 의미를 뒀다.

토론에 참석한 서울지검 허상구.이옥 검사는 이날 오후 6시 서울지검 기자실로 내려와 '대통령과의 대화에 대한 검사들의 의견'이란 발표문을 냈다.

주요 내용은 ▶아쉬움이 있지만 평검사의 입장을 국민과 대통령에게 전달했다는 것에 만족하며▶대통령이 검찰중립화 의지를 밝힌 것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투명하고 공정한 인사시스템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며▶이번 인사도 합리적 기준과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산지검의 한 검사는 "대통령의 청탁전화건이나 SK수사 과정의 외압을 거론한 것은 다소 의외였지만 검찰의 실상을 전한다는 측면에서 잘한 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부장검사급 이상 간부들의 반응은 달랐다. 법무부의 한 간부는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추진하는 인사의 정당성을 부각시켜준 토론회였다고 본다"며 "사실 인사권이 있는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데는 대응할 논리가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서울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평검사들이 좀 미숙했다. 盧대통령의 형 건평씨 이야기와 청탁전화 이야기를 꺼내 대통령을 불필요하게 자극했다"고 말했다.

김원배.김승현.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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