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 내각의 대한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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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중각영 신임 일본 수상은 18일 한·일 국교 정상화 기본 조약을 폐기할 의향이 전혀 없을 뿐 아니라 『지금으로서는 북한을 승인할 의사도 없다』고 밝힘으로써 한반도에서 한국만을 계속 인정할 듯을 명백히 했다. 대한 정책에 관한 야당 질의서에 답하는 형식으로 밝혀진 이 같은 견해는 이달 초 전중 신내각이 출범한 후 최초의 공식 견해인 만큼 신내각의 대한 정책을 주시해 오던 우리로서 한·일 관계의 앞날을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로서 환영하는 바이다.
그러나 전중 수상 정부의 성립은 같은 자민당 내의 「정권 교체」라 해도 안·좌등 전 수상들이 영도했던 당내 우파 세력의 쇠퇴와 전중·대평 (외상)·중증근 (통산상) 등 중도 보수파의 신체제 등장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일 관계를 포함한 외교 정책의 근본에는 설사 단시일 내의 큰 변동을 예상할 수는 없다하더라도, 우파 체제를 승계하는 정권 보다 정세 변화에 민감하고 유연성을 보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고 전중 수상 자신도 일본이 앞으로 당면할 내외 문제에 있어 그의 경쟁자였던 복전 후보 보다 더 신속히 대응하고 보다 신축성 있는 자세를 보일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와 관련하여 전중 신 정권의 대한 정책을 반영하는 견해에 있어 「단서」의 유보를 부대시킨 것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즉 한반도의 긴장 완화를 주시하면서 북한과 인도·문화·스포ㅊ·경제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교류를 점차 확대 해 나가겠다는 것이며, 또 『지금으로서는』 북한을 승인할 의사가 없다고 한 점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앞으로 어느 싯점에 가서는 한반도에서 대한민국만의 승인을 재고할 수도 있다는 듯한 함축성을 지니고 있다.
전중 수상 정부는 앞으로 대한 및 대북한 정책에 있어 내외로 압력을 받을 것이 엿보이는 것이다. 자민당 내의 대소 17개 파벌의 타협으로써 성립된 전중 내각의 취약성과 사회당 등 야당의 갖가지 압력을 떠나서 일본은 대 중공 관계 개선과 대소 강화 조약 체결 협상 과정에서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라는 간접적인 부대 조건에 부딪치게 될지도 모른다.
소련은 대서방 흥정에 있어 끊임없이 공산 동독 정권의 승인 내지는 현실 인정을 주장해 왔으며 중공의 지도층도 기회 있을 때마다 북한 문제를 쳐들어 왔다. 좌등 전 수상 정부는 미·일 안보 조약의 자동 갱신, 한·일 국교 정상화, 「오끼나와」의 반환 등 그런대로 일본국민에게 내세울 「공적」을 남겼다. 따라서 그 후임자인 전중 수상으로서도 중공과의 관계 정상화나 소련과의 평화 조약 체결을 서두르는 나머지 필요 이상의 정치적 양보를 할 유혹을 물리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는 일본 정부가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로 인정한 48년12월의 유엔 총회 결의를 대전제로 받아들임으로써 맺은 한·일 기본 관계 조약의 정신을 잊지 않고 앞으로『어느 때에 가서는 재고할 수도 있다』 운운의 태도는 배제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일 기본 관계의 변화는 정치도의 문제를 떠나서 「델리키트」한 국면에 접어들 남북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될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아가서는 동북아 지역의 「안정 속의 긴장 완화」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경제·정치·문화 전반에 걸쳐 양국간에 다시없는 우호 관계를 초래했고 동북아의 안정 추세에 크게 기여한 65년의 한·일 국교 정상화 조약 체결에 있어 현 대평 외상이 당시 외상으로서 주역을 맡았던 사실도 상기시키고 싶다. 우리는 일본이 한반도의 분단을 고정시키게 되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기 바라며 또 그러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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