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안케· 패스」엔 갈대만 흔들리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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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월18일 「퀴논」에 도착, 노래로도 유명한 맹호사단에 갔었다. 정득만 사단장을 따라서 「헬리콥터」로 약 20분 가량 가다가 아군의 진지가 보이는 낙타의 등허리같이 생긴 고지에 내렸다.
여기가 지난 4월11일 안개 자욱한 새벽에 적의 기습을 받고 오직 종교적인 힘과 신앙심으로 나라를 위해 정열을 바친 용사들이 고지를 탈환할 때까지 백병전을 벌였던 638고지 「안케·페스」였다.
어마어마한 「정글」은 불에 타서 해골처럼 회색으로 뼈들만 남아서있고 무상한 「부라슈스」(갈대)만이 열풍에 흔들리는데 전사자의 혼일지도 모를 힘이 센 호랑나비 떼들이 「슛슛」 나래소리를 내며 날아다닌다. 시야는 역시 젖꼭지 같은 모습을 한 산봉우리들이 산파처럼 물결치듯, 하늘의 구름에 닿을 듯, 평화롭게 한없이 펼쳐져 있는 것이 이상했다.
그게 안남산맥이라고 한다. 옛날 안남국시대에는 안남미인으로 유명했고 지금은 쓸모 없는 소「정글」지대로 변해버린 끝없이 펼쳐진 옥토 「고보이」평야가 멀리 바라다 보였다. 바로 눈 아래 19번 도로에는 가끔 월남「버스」 같은 것이 너희들과는 상관없다는 듯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소대장 이무포 대위의 무훈과 정태경 대위의 고립작전의 성공에 경의를 표했고, 그 강재구 소령을 평소에 경모했다는 영웅중대장 고 임동춘 대위의 죽음을 생각하고 가슴이 아팠다.
치밀하고 찬찬한 사단장님은 우리들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바위를 보세요. 여기가 처음 적 다섯 놈이 숨어있던 곳이예요.』 그 말을 듣고 김기창씨와 내가 그 바위와 「부라슈스」를 「스케치」하니까 「카메라」를 멘 어떤 화가 분이 『촌놈들』하고 비웃는다.
「정글」속은 가시 돋친 대나무, 귀찮은 「아이·러브」가시 등 여러 가지 고약한 나무들이 많아 머리칼을 잡아당기고 팔을 긁어 피를 흘리게 하여 단 3m를 전진하는데도 여러 시간을 잡게 했다.
더군다나 적이 어느 곳에 숨어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 월남전쟁은 더 힘이 든다는걸 알 수 있었다.
이번 아군의 승리를 누차 말하게 되지만 무엇보다도 신앙심의 힘이 컸다고 이구동성으로 이곳 장병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격전에서 전사한 용사들만은 아무 말이 없다. 명복을 빌 뿐이다. <글·그림 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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