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에 등거리접근 시도|일 전중 정권의 첫 대한정책 반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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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동경=박동순 특파원】일본의 대한정책이 금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현 단계에서 정확히 예측하기는 극히 어려운 일이다. 한일관계는 비단 일본의 국내정세 뿐 아니라 일·중공, 일·소련, 미·일 관계, 특히 한반도에서 나타날 남북관계의 변화에 의해서도 민감하게 영향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일본의 대외정책은 국제적 긴장완화「무드」 및 국내의 수상교체를 계기로 큰 전환의 고빗길에 서 있다.
이미 일·중공 국교회복을 위한 정지작업이 급「템포」로 진전되고 있으며 25일부터 열린 미·일 통상회의에서 미·일 경제관계, 9월부터는 소련과의 평화조약체결을 위한 실무회담이 열린다.

<당분간은 사태추이 정관>
이러한 일련의 다면적인 대외교섭에서 일본정부는 「사또」정권에 의해 설정된 「틀」을 부분적으로 깨뜨리면서 대외정책을 조정해 가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전중 정권 그 자체도 역시 같은 자민당정권이라는 점에 정책전환작업의 한계가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일본의 대한정책도 그 기본에는 변함이 없으리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분석이다.
18일에 공표된 전중 정권의 대한정책이 『한·일간의 우호협력관계를 계속 발전시켜 갈 것을 기본으로 한다』고 강조한 사실은 바로 이런 점을 반영한 것이며 남북공동성명이 나왔을 때도 일본정보 당국자는 『남북간의 현재의 균형을 깨뜨림으로써 모처럼 조성된 긴장완화「무드」를 해치지 않도록 당분간 사태의 추이를 정관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따라서 수상교체나 남북접근움직임이 일본의 대한정책에 당장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앞으로의 정세변화에 따라 이러한 대한정책방향이 서서히 수정돼 갈 것만은 명백하며 그런 점에서 이번에 공표된 대한반도정책 지침은 몇 가지 시사를 내포하고 있다.

<남북한관계 단계적 개선>
말하자면 ①일본은 아직도 한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대한반도정책의 기본으로 삼고 있으며 ②그러기 때문에 북한을 승인할 생각이 없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그러나 ③앞으로의 정세추이를 지켜보면서 「긴장완화 방향에 따라」 경제·문화·「스포츠」등 각분야의 교류실적을 쌓아가겠다는 얘기와 북한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방침에 「지금으로서는」이라는 단서가 붙은 사항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정세의 추세를 봐가면서 대북한관계를 단계적으로 개선하되 이와 병행해서 한국과의 관계도 보다 긴밀히 해감으로써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룩된 현재의 남북균형을 계속 유지하면서 대한국 및 대북한협력관계의 크기나 깊이를 더해 간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일본정부가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이미 조총련계축구 「팀」과 무용단의 재입국을 허가한 것 이외에도 기술자왕래와 심지어는 수출입은행자금 사용 등에 있어서까지 종전보다는 훨씬 탄력적으로 임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가 있다.
이런 점을 예상했기 때문에 일본경제계는 벌써부터 북한에 대형기술조사단을 파견하여 앞으로 있을 본격적인 무역거래의 기반을 다지는 한편 상품거래 뿐 아니라 대형「플랜트」와 종합병원건설에 이르기까지 거래규모를 대형화하고 다양화하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편중 않는 것이 기본자세>
그러나 이러한 대북한접근에 병행해서 대한국 관계도 보다 긴밀히 함으로써 대한반도정책이 지금 싯점을 기준으로 앞으로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편중되게끔 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전중 정권의 기본적 자세이며 그렇게 되면 현재의 남북균형은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정부의 견해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수상교체나 대북한접근 등에 의해 일본의 대한경제협력내용이 후퇴하거나 현재상태에서 동결되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보다 촉진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그러한 협력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일본측 태도가 아니라 한국측의 수용태세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어쨌든 한가지 명백한 것은 대한행 문호가 서서히 열려가고 있으며 그 속도가 조절되고 있을 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속도도 「사또」정권당시에 비하면 상당히 빨라지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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