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굿 '공장의 불빛' 음반 낼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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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 홍콩아츠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지난 6일부터 사흘간 극단 학전의 김민기(52) 대표는 내내 긴장한 얼굴을 했다.

10여년에 걸쳐 갈고 닦아온 그의 작품에 대한 자신감, 아시아 최고의 페스티벌에 초청됐다는 자부심, 그리고 독일.일본 등 해외 공연을 할 때 외국인들의 반응에서 얻은 확신 등이 교차했기 때문일 터이다. 약간의 두통에 시달리면서도 공연을 잘 치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를 만났다. 아무래도 '지하철 1호선' 이후의 계획이 궁금했다.

그런데 그는 불쑥 "3월 말부터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미 지난해 3월부터 9개월간 서울과 원주를 오가며 새 작품 구상에 골몰했다. "말이 작품 구상이지 그냥 노는 거예요. 각종 VCD.DVD.CD 쌓아놓고 원없이 보는 거요."

토지문화관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니 즉각 "술을 안 마셔도 되기 때문"이라는 답이 날아온다. 지인들이 "김민기가 마신 술을 합하면 저수지 하나쯤은 될 것"이라는 우스개를 던질 만큼 애주가인 그가 술을 기피할 정도라니 공부에 맛을 들이긴 했나 보다. 토지문화관이 어렵게 운영되는 걸 안타까워해 굳이 받지 않겠다는 하숙비도 낼 참이다.

그가 생각하는 '지하철 1호선'의 후속작은 한.중.일 등 아시아의 문화를 아우르는 독특한 것이다. "한국의 판소리.마당극뿐만 중국의 경극, 일본의 가부키와 노(能)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모두 외형은 다르지만 결국은 하나의 끈이 그 안에 있거든."

일주일 평균 사흘 토지문화관에 틀어박히고 나머지 날들에는 서울에서 다른 일을 진행한다. 바로 1980년대 대학가와 노동계에 카세트 테이프로 은밀히 나돌았던 '공장의 불빛'을 음반으로 재작업하는 일이다.

'공장의 불빛'은 70년대 동일방직 노조 탄압 사건을 소재로 당시 김대표가 노래굿의 형식으로 만든 작품. 현재 연주자와 가수.편곡자를 물색하고 있다.

'공장의 불빛'은 각각의 노래가 이야기의 연속성을 갖고 있어 하나의 무대 작품으로도 손색이 없다. 주변에는 그가 이 작품을 핑크 플로이드의 '더 월'과 같은 음악극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한다.

핑크 플로이드는 전쟁과 사회적 모순을 오페라 형식으로 구현한 음반 '더 월'을 공연할 때 무대에 벽을 쌓은 뒤 이를 부수는 형식의 퍼포먼스를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런 새 작품에 대한 질문에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이렇게 말을 돌렸다. "사람은 지향하는 존재예요. 뭔가 할 거리를 잡았으면 그걸로 근사한 걸 한번 만들어야지. '공장의 불빛'도, 아직 구상 중인 새 작품도 그런 놈이 나올 거라고 난 믿소."

홍콩아츠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얻은 긴장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는 수줍은 소년처럼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홍콩=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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