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후 6개월] 180억 원전비리 탓 677배 국가적 손실 … LS그룹은 뒷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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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원전 핵심 부품인 ‘제어 케이블’ 관련 비리가 적발됐다. 시험성적서가 위조됐다. 관련 케이블이 들어간 부산시 기장군 신고리 1, 2호기와 경북 경주시 신월성 1호기 가동을 중단한다.” 지난 5월 28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이 같은 원전비리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이튿날 부산지검 동부지청에 원전비리수사단(단장 김기동 지청장)을 차렸다. 그 뒤 꼭 6개월. 그간 검찰은 케이블 시험성적서 위조를 공모한 LS그룹 계열사 JS전선의 엄모(52) 고문과 박영준(53)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 140여 명을 기소했다. 원전비리 중 시험성적서 위조에 대한 1심 선고공판도 다음 달 6일 열릴 예정이다. 그러나 정작 비리의 몸통 격인 한국수력원자력과 LS그룹 측은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1년간 원전 가동 중단·연기 피해 눈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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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낸 원전비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JS전선이 시험성적서를 위조해 불량 원전 제어 케이블 180억원어치를 납품한 사건이다. 다른 하나는 설비·부품을 납품하기 위해 원전 관련업체들이 정권과 한국전력·한수원 고위층·간부들에게 금품을 준 권력형 비리다.

 이 중 시험성적서 위조는 다음 달 6일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에서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사회적으로 더 큰 피해를 준 부분이기도 하다. 권력형 금품 비리는 부품 자체에는 이상이 없어 관련 원전이 정상 가동 중이지만, 시험성적서 위조는 불량 부품이 들어간 것이어서 아예 원전을 멈췄기 때문이다. 가동 중인 신고리 1, 2호기와 신월성 1호기를 세우는 바람에 올여름 찜통 더위 속에 국민들이 고통을 겪었을 뿐 아니라 곧 발전을 시작할 예정이던 신월성 2호기와 신고리 3, 4호기마저 가동을 연기해야 했다. 검찰과 원자력안전위원회 조사 결과 시험성적서가 위조된 케이블은 원전용으로 적합한지를 살피는 화재·고온·고압 시험을 통과하지 못한 문제 부품으로 드러났다.

 원전 가동 중단·연기에 따른 전체 손실은 10조원을 넘었다. 검찰과 한수원에 따르면 일단 케이블 재구매와 교체 비용만 1048억원에 이른다. 총 1년으로 예상되는 원전 가동 중단·지연에 따른 발전 손실은 1조3541억원이다. 원전이 멈춘 탓에 모자란 전력을 대려고 비싼 액화천연가스(LNG)나 석유·석탄을 때 전기를 만드는 비용은 훨씬 크다. 1년간 10조7310억원에 이른다. 전부 합한 손실액은 약 12조2000억원. JS전선이 불량 케이블 180억원어치를 납품한 비리 때문에 국가사회 전반적으로 그 677배에 이르는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검찰은 지난 8일 부산지법 동부지원에서 열린 결심 공판에서 JS전선 엄 고문에게 징역 15년, 황모(61) 전 대표에게 징역 8년을 구형하는 등 관련자들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려달라고 했다. 당시 검찰은 “원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리고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을 뿐만 아니라 국가 신인도마저 하락시켜 엄중한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큰 손실을 야기한 시험성적서 위조에 가담한 곳은 JS전선과 한수원, 그리고 시험기관인 새한티이피, 시험성적서를 승인한 한국전력기술 4곳이다. ‘원전 마피아’라 이름 붙은 곳들이다. 그중에서도 LS그룹 계열의 JS전선과 한수원이 몸통으로 꼽힌다. 불량 케이블을 납품하고 받아 사용한 회사여서다.

한수원 “1급 이상 사퇴”라더니 그대로

 그러나 정작 비리의 핵심인 한수원·LS그룹·JS전선은 비리 방지 대책 등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수원은 지난 6월 시험성적서 위조 긴급대책회의를 하고 1급 이상 임원·간부 197명 전원이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자진 사표를 냈다. 그러나 자진 사표를 낸 임원·간부 중에서 지금까지 비리와 관련해 실제로 사표가 수리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는 실정이다. 대국민 ‘쇼’였던 셈이다. 납품업체와 한수원 간 유착을 막기 위한 ‘연결고리 끊기’ 노력 또한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5년간 한수원에서 퇴직한 1급 이상 46명 중 93%인 43명이 원전 관련업체에 재직 중이라는 점에서다. ‘에너지의 미래를 생각하는 법률가 포럼’ 대표인 정승윤(46)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아무리 설비·부품 품질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납품 업체와 끈끈한 연결 고리가 있으면 비리의 사슬을 끊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원전비리사태를 계기로 한수원 등 원전 관련 공기업 2급 이상 간부에 대해 퇴직일로부터 3년간 협력 업체 취업을 못하도록 하는 비리 방지 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또한 별 효력이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번 원전비리에 연루된 한수원 직원 30여 명 중 대부분이 3급 이하이기 때문이다.

LS그룹, JS전선 감사도 않고 “대책 없다”

 또 다른 몸통인 LS그룹은 비리 방지에 손을 놓다시피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신문에 “LS그룹 계열사인 JS전선의 원전용 케이블 납품과 LS·JS전선의 입찰 담합 문제로 많은 심려를 끼쳐드려 참담한 마음으로 사죄한다”는 내용의 사과 광고를 낸 게 전부다. LS그룹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비리 방지 대책에 대해 내부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결과를 빨리 내놓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사실 뾰족한 대책은 없다”고 밝혔다. 또 “JS전선이 시험성적서를 위조하면서 관련기관에 금품을 줬는지에 대한 자체 감사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전력난 등 국가적 손실에 대한 보상은 “법원의 판단이 나오는 대로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한수원이 지난 11일 JS전선 등을 상대로 1300억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을 두고 하는 얘기다.

 JS전선과는 다른 기업이지만 LS계열 LS전선은 최근 그룹 지주회사인 LS 및 JS전선 등과 함께 원전용 케이블 구매 입찰에 담합을 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 제재를 받았다. 공정위는 LS, LS전선, 대한전선 등 8개사에 과징금 63억5000만원을 부과했다. 이런 가운데 한수원이 JS전선의 불량 케이블 대체품으로 LS전선 제품을 구입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한수원과 LS그룹은 “시험을 통과한 케이블이 국내에서는 LS그룹에서밖에 생산되지 않아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석관훈 에너지시민연대 상임정책위원은 “원전 비리에 대해서는 해당 기업의 반성과 책임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LS그룹이 대가를 받고 대체품을 납품하는 것은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부산=위성욱 기자, 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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