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용 기초한자의 찬 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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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교부는 금년 초에 발표한 중-고교 교과과정에서의 한문교육 부활을 위해 그 바탕이 될 기초한자 1천7백81자를 선정완료하고 7일 그 1차 시안을 공개했다. 당국은 앞으로 광범한 각계 의견을 종합, 이 시안내용을 7월중으로 확정짓겠다고 밝히면서, 그렇다고 이를 일반사회에서도 사용토록 강요하는 것은 아니라고 부연했다. 당국의 이 같은 신중한 태도는 더 말할 것도 없이 한자의「교육」과 「사용」문제를 의식적으로 혼동케 함으로써 불필요한 파동을 야기 시키려고 하는 일부 측의 동향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것으로 당연하고 적절한 배려라고 하겠다.
이날 밝혀진 1천7백81자의 기초한자는 한적 고전의 독해를 위해서는 물론, 현금 한자문화권 각국에서 상용되고 있는 일상적인 한자어술어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수범위를 망라한 것으로서, 실제로 이를 토대로 한 구체적인 성어 예를 참조해 보면, 이번 선정이 대체로 무난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로서 바랄 것이 있다면 이번 기초한자 제정이 계기가 되어 지금까지 정도를 크게 벗어났던 이 나라 어문교육정책 전반에 대해서 다시 한번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해야 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번 문교당국이 발표한 한문교육 실시요강에 전혀 문제점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첫째, 중학교에서 8백88자, 고교에서 8백93자로 나뉘어 각각 독립교과로서 가르치기로 한다는 이 기초한자의 교육과정 운영이 그러한 교육과정을 두게 한 기본목표를 달성하는데 반드시 적합한 것인지는 여전히 큰 의문이다. 다른 나라에서의 경험으로 보거나, 현행 우리 나라 중등학교 교과과정의 운영실태를 보거나 1천자 내외의 기초한자교육은 오히려 일찍이 국민학교 과정에서부터「국어」·「국사」교과의 일환으로서 실시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선정된 기초한자 하나 하나는 현재의 일용 성보다는 전적문헌 등에서의 사용빈도가 기준이 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한자문화권 각국에서의 실제의 조어 례나 사용범위 등을 등한시하거나 그 범위를 너무 엄격하게 고정한데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다.
비근한 실례로, 이번 선정된 기초한자 중에「금융」의「금」자는 있으나「융」자가 빠져 있는 것은 그 한가지 경우이다. 「융」자 없이도 고전문화 계승에는 별 지장이 없다고 할지 모르나, 이 글씨를 모르고서 오늘날 한자문화권 각국의 신문을 읽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와 유사한 현상이 일본의 교육한자 제정과점에서도 야기되어 문제가 된 일이 있다.
즉 1948년 최초의 교육한자(8백81자) 제정 당시에는 「오」자가 빠져있었으나, 그 뒤에 나타난 심각한 공해문제에 관한 신문술어에「오염」이란 말이 범람함으로써 작년(71년)에는 이의 추가(1백15자)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요컨대, 고전문화에 대한 기초적「애크세스」(통로)를 마련한다는 점과 아울러서, 오늘날 한자문화권 안에서의 조화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한다는 두 가지 측면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세 째, 모든 교과과정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그 내용 못지 않게 교수방법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듯하다. 문교부는 이를 위해 통일적인 한문교과서를 마련, 되도록 속담·격언·고사성어 등을 인용, 재미있는 교과과정운영을 기하도록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이와 함께 상형문자로서의 한자의 구조적 특성과, 여기에서 파생한 조어례 등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계발하도록 하는 교수방법의 개발이 또한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이점은 국어구사의 재교육과정과 교사용 교과지도 지침에 충분히 반영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다시 한번 강조해야 할 것은 한문교육을 부활키로 한 이번 조처를 계기로, 이 나라 어문교육 내지 국사교육과정의 전 영역에서 일 절의「어내크러니즘」적 경향이 불식되고, 좀더 합리적인 사고, 보다 과학적인 방법론의 도입 등이 진지하게 모색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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