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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골재를 철판에 구워 말리며 … 현대건설, 해외 수주 1000억 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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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현대건설은 해외에 첫 진출한 1965년 이후 48년 동안 총 1010억 달러어치의 공사를 수주했다. 사진은 최초의 한국형 원전 수출로 2011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수주한 원자력발전소 공사 현장. [사진 현대건설]

1000억 달러(약 106조원). 건설업계의 맏형인 현대건설이 반세기 동안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다. 올해 정부 예산(342조원)의 3분의 1, 지난해 수출액(5478억 달러)의 18%에 해당하는 액수다.

 현대건설은 중남미 지역에서 14억 달러 규모의 대형 정유공장 공사를 수주해 해외건설 수주 누적액이 1010억526만 달러(107조1600억원)를 기록했다고 24일 밝혔다. 1965년 이 회사가 국내 건설사 가운데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한 이후 48년 만이다. 이 금액은 국내 1266개 건설회사가 그동안 143개 국가에서 수주한 전체금액(5970억 달러)의 17%를 차지한다.

 현대건설은 그동안 전 세계 55개국에서 781건의 공사를 따냈다. 절반이 넘는 547억 달러(54%)가 중동에서의 수주다. 다음으로 아시아 319억 달러(32%), 아프리카 72억 달러(7%), 중남미 38억 달러(4%) 순이다. 공사 종류로는 플랜트(300억 달러)가 가장 많고 토목환경(255억 달러), 전력(247억 달러), 건축(208억 달러)이 뒤를 이었다. 이 회사 권오식 해외영업본부장은 “중동 위주에서 벗어나 아프리카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고 다양한 공사를 골고루 수주해 해외사업이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단일 건설사의 해외 수주 1000억 달러 돌파는 도전정신과 뚝심이 맺은 결실이다. 이 회사는 65년 태국에서 540만 달러 규모의 파타니 나라티왓 고속도로 건설공사를 수주하며 첫 해외 수주 실적을 올렸다. 당시 아스팔트 콘크리트(아스콘) 생산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장비를 직접 고안해 만들고 비에 젖은 골재를 건조기 대신 철판에 굽는 기지를 발휘해 공사를 마무리했다.

 70년대 중동 건설 붐을 타고 75년 바레인 아랍 수리조선소 공사를 따내며 중동 진출의 닻을 올렸다. 근로자들은 물이 부족해 콜라로 양치질을 하며 작업했다. 이듬해인 76년엔 세계 건설사에 ‘20세기 최대 역사(役事)’라 불리는 9억3000만 달러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산업항 공사를 수주했다. 이 공사에 쓰인 자재는 모두 국내에서 조달됐다. 국내에서 공사 현장까지 한 번 오가는 데 35일이 걸렸다. 이때 들어온 오일머니는 1차 오일쇼크로 휘청거리던 국가재정에 큰 보탬이 됐다. 주베일산업항 공사 수주금액은 당시 정부예산의 25%에 달하는 금액이었고, 선수금 2억 달러는 한국은행 외환보유액(2000만 달러)의 10배였다.

 현대건설은 80년대 초반 싱가포르 마리나센터 건축공사를 시작으로 동남아 시장 공략에 나섰다. 90년대 중반 이후 기술력이 요구되는 고부가가치의 플랜트 공사를 본격적으로 수주하기 시작해 총 26억 달러의 이란 사우스파 가스처리공사를 수주했다. 이후 중남미·아프리카 등으로 시장을 넓혀 나갔다.

 사업구조 고도화도 추진해 유럽·일본 일부 업체가 독점하던 천연가스액화정제시설 공사 등을 따냈다. 2011년엔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최초의 한국형 원전 수출인 31억 달러 규모의 원자력발전소 공사를 수주했다.

 2011년 현대차그룹으로의 편입은 해외 수주에 탄력을 붙였다. 현대차그룹이 갖고 있는 글로벌 네트워크와 시너지를 낸 것이다. 2011년 말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의 발전소 증설 공사를 따냈고 지난해엔 콜롬비아 베요 하수처리장을 수주했다.

 현대건설은 앞으로 전체 사업에서 해외부문 비중을 지속적으로 늘려 해외매출과 해외 수주 비중을 각각 65%, 75%까지 높일 방침이다. 신재생·오일샌드(Oil Sand) 등 신성장동력 사업 진출에 힘쓰고 해외 부동산 개발사업, 물·환경사업 분야의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다. 이 회사 정수현 사장은 “연구인력 확충과 개발비 투자를 통해 신성장 사업 기술개발과 실용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의 1000억 달러 돌파는 국내 건설업계의 연간 해외 수주액 1000억 달러 꿈을 이뤄내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현재 연간 해외 건설 수주액은 700억 달러 정도다. 올 들어 24일까지는 528억 달러를 수주했다.

 해외건설협회 김태엽 정보기획실장은 “현대건설은 해외시장 개척에서도 ‘맏형’ 역할을 해왔다”며 “앞으로 중견·중소업체들의 해외진출을 적극 지원해 국내 건설업계의 해외 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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