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감정에 충실하라 그것이 살아있는 삶일지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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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호 26면

출판사: 민음사 쪽수: 526쪽 가격: 1만9500원

철학자 스피노자의 48가지 감정론을 문학 작품과 철학 이야기로 재미나게 풀어보자. 주체는 인문학적 글쓰기 내공과 대중적 지명도를 겸비한 철학자 강신주-.

『강신주의 감정수업』

신문에서 잡지로의 변신이라는 대대적인 지면 개편을 앞두고 있던 편집자 입장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었다. 거절은커녕 다른 곳으로 가기 전에 버선발로 나가 모셔와야 했다. 글의 방향과 내용이 뚜렷하니 코너 작명도 술술 풀렸다. ‘강신주의 감정수업’.

문제는 분량. 이미 배치된 지면상 200자 원고지 12장이 한계였는데 30장을 요구했다. 커버 스토리도 30장이 안 된다. 안타깝지만 문학에만 초점을 맞춰 대폭 줄이기로 했다. 그럼에도 원고는 매번 12장을 살금살금 넘었고 ‘수술’은 불가피했다.

그러니 연재를 시작한 지 꼭 2년 만에 원래 의도가 거의 고스란히 들어 있는 두툼한 책을 받아들었을 때의 뿌듯함이란 정말 남다른 것이었다.

48개의 감정론(연재는 여러 사정상 45개만 했다)은 ‘땅의 속삭임’ ‘물의 노래’ ‘불꽃처럼’ ‘바람의 흔적’이라는 네 가지 카테고리에 구분돼 있다. 이성과 논리의 대척점에 서서 인간의 상상력을 ‘땅, 물, 불, 바람’의 네 가지 물질로 구분한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방식을 따랐다.

철학자 중 거의 유일하게 ‘감정의 윤리학’을 옹호했던 스피노자의 섬세한 감정론이 두드러지게 표현된 문학 작품들에 대한 분석이 우선 정교하게(또 넉넉하게!) 이어진다. 이와 관련한 저자 소개는 폭넓은 이해를 돕는다. 여기에 마무리를 장식하는 ‘철학자의 어드바이스’는 지금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 독자에게 친철한 상담자 구실을 톡톡히 한다. 매 장마다 들어 있는 다양한 국내외 작가의 그림은 텍스트에서 느끼는 감정을 이미지로 형상화해 주는 보너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는 것의 소중함을 이렇게 말한다. “군대에서, 직장 상사 앞에서, 학교 선생님이나 교수들 앞에서, 시부모 앞에서, 경찰이나 검찰 앞에서, 조직 폭력배 앞에서, 아니면 사회 통념이나 정치 권력 앞에서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려고 하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감정을 죽이는 것, 혹은 감정을 누르는 것은 불행일 수밖에 없다. 살아 있으면서 죽은 척하는 것이 어떻게 행복이겠는가. 그러니 다시 감정을 살려내야 한다. 이것은 삶의 본능이자 의무이기 때문이다.”

그 감정이란 놈은 그런데 워낙 복잡미묘하다.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사랑인 줄 알았는데 기실은 (상대의 불행을 먹고 사는) 연민이었다던지, 처음에는 기쁨의 감정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슬픔인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 땅의 철학자는 말한다. ‘좋다’고 느끼는 것을 선택하고 ‘나쁘다’고 느끼는 것을 거부하라고. 나의 삶을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선택하고 반대로 우울하게 만드는 것을 거부하라고. 그래서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뒤섞인 48개의 ‘인간의 얼굴’에 능통해져야 우리는 비로소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럼에도 특정 감정에 빠져 있는 독자라면 뭔가 부족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럴 땐 책에 소개된 소설을 집어들고 정독할 일이다. 위대한 소설 속에는 이미 인간군상의 고결함과 구질구질함이 적나라하게 들어 있다.

아,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표현하며 사는 것도 이렇게 ‘공부’를 해야 하는구나. 세상에 쉬운 일이란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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