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從軍記] 미군들 모래폭풍과 '沙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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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공화국 수비대에 앞서 미군을 가로막고 나선 것은 사막의 모래폭풍이었다.

미리 준비한 스키용 고글(안경)도 소용없었다. 모래 알갱이들이 안면을 파고들어 눈뜨기조차 힘들었다. 롬베르거 기술담당 준위는 "우선 모래바람과 친해져라"며 "더 센 바람이 불어닥치면 손에 쥔 총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때마침 라디오에선 현지어로 '토즈'라고 불리는 모래폭풍이 쿠웨이트 전역을 강타해 엘 쿠웨이타 국제공항이 일시 폐쇄되고 교통사고가 잇따른다는 뉴스가 나왔다.

미군 최초의 종군기자 프로그램에 따라 중앙일보를 포함한 11명의 각국 종군기자들은 6일 오전 11시 미 승리군단 휘하 '캠프 버지니아'에 도착했다.

이라크로 연결되는 쿠웨이트 6번 고속도로의 동쪽 사막 한복판에 자리잡은 부대는 15만㎡ 넓이에 장병 8천여명이 배속돼 있었다. 종군기자들은 수송.전투물자 지원을 맡은 16전투대대에 배정됐다. 전쟁이 시작되면 공격부대를 따라 이라크 영내에까지 진격하게 된다.

기자와 미국의 CNN.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영국의 BBC, 일본의 NHK, 독일 뉴스채널 N24와 미국 지역언론 등 동료들은 막사를 배정받자마자 갖고 간 비닐 랩을 꺼내 노트북 컴퓨터와 촬영장비부터 감싸기 시작했다. 미군 관계자로부터 "사막에서 노트북을 그냥 사용하면 10분도 안돼 자판이 망가진다"고 귀띔받았기 때문이다.

6백25명의 전체 종군기자 중 최초로 '입대'하게 된 11명은 출발에 앞서 '보도지침(Ground Rule)'에 서명했다. 작전을 방해하거나 부대원을 위험에 빠뜨리면 안된다는 등 50개 항의 지침이었다. 부대 이름이나 장소는 써도 전투기.탱크의 숫자 같은 정보는 보도하지 말라고 한다.

BBC의 피터 그랜트 기자는 "반전(反戰)에 기울거나 미군만 두둔하는 일 없이 객관적으로 보도하겠다"고 다짐했다. NHK의 유이 히데키(油井秀樹) 기자도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보도할 것"이라며 미군 측을 안심시켰다.

군단 공보담당인 셀루시 대령은 "군단장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명령하면 즉시 임무를 완수할 준비가 됐다'는 말을 꼭 전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소개했다.

부대 관계자도 "공격에 충분한 만큼인 80%선의 전투 준비 태세가 갖춰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롬베르거 준위는 "대대가 완전히 통합되려면 며칠 정도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투 태세가 아직 최상은 아니라는 뜻으로 들렸다.

장병들의 사기는 충천해 보였다. 브래들리 전차 옆을 지키던 알바레즈 하사는 "독재자 후세인을 없애야 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결정은 옳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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