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기만 해도 차 보험료 오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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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영업사원 김모(39)씨는 근래 3년간 174만원(연 58만원)의 자동차보험료를 냈다. 매년 한 번씩 사고가 났지만 모두 가벼운 접촉사고라 보험료가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럴 경우 보험료가 3년간 195만원으로 지금보다 21만원(12%) 늘어난다. 접촉사고를 낸 운전자에 대해서도 보험료를 올리는 방안이 시행될 예정이어서다.

 금융감독원이 큰 사고를 낸 운전자보다 사고를 자주 낸 운전자에게 보험료를 더 많이 물리는 방안을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상습 사고 운전자의 과도한 보험처리를 막겠다는 취지지만 운전자들은 “보험료를 올리려는 꼼수”라며 반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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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보험개발원이 연구용역해 금감원에 제출한 ‘자동차보험료 할인·할증 기준 개선안’에 따르면 현재 사고의 경중에 따라 보험료를 매기는 점수제가 경중에 상관없이 사고를 많이 낼수록 보험료를 더 내는 건수제로 바뀐다. 금감원과 보험개발원은 이달 28일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렴한 뒤 이르면 2015년부터 새 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다.

 한국은 1989년부터 24년간 자동차보험료 산정 기준을 점수제로 운영했다. 당시에는 자동차는 적은데 사망사고가 많았지만 이제는 차가 많아진 대신 접촉사고가 늘어 현실에 맞는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게 개선안 마련의 취지다. 금감원에 따르면 한국을 뺀 다른 국가는 대부분 건수제로 운영하고 있다.

 개선안에 따르면 자동차사고 때 가해자에게 0.5(접촉사고)~4점(사망사고)의 벌점을 부과하는 현행 기준을 없애고, 모든 사고에 똑같이 1점을 부과하기로 했다. 접촉사고나 사망사고 모두 보험료 할증률이 같아진다는 얘기다.

 금감원이 타깃으로 하는 핵심 대상은 사고를 내도 보험료가 오르지 않는 벌점 0.5점(수리비 약 200만원 이하)의 접촉사고다. 보험료 할증 대상은 벌점 1점 이상(수리비 200만원 이상의 사고나 피해자가 부상을 입는 경우)이다. 이렇다 보니 간단히 주머닛돈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경미한 사고까지도 보험으로 처리하려는 운전자가 너무 많아졌다는 게 금감원의 진단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보험만 믿고 부주의한 운전을 하다 접촉사고를 낸 사람은 또 사고를 낼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며 “접촉사고 때도 보험료를 올리면 상습 사고 운전자들이 방어운전을 해서 교통사고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무사고 운전자에게는 지금보다 많은 혜택을 주기로 했다. 한 번 사고를 내면 ‘3년간 보험료 할인 금지’의 제약을 받는 현행 기준이 불합리하다고 판단해서다. 개선안에서는 사고경력이 있어도 이후 1년간 사고를 내지 않으면 바로 보험료를 깎아주는 방안을 도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운전자들과 시민단체의 시선은 곱지 않다. “운전자 대부분이 한두 번의 접촉사고를 경험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운전자 전체에게 부담이 가는 조치”라는 얘기다. 이젠 접촉사고가 나면 보험처리를 하지 않거나 보험료 할증을 감수하고 보험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서다.

 이번 개편안의 추진 배경이 손해보험사의 수익성 악화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도 나온다. 손보사들은 자동차보험료를 올리지 못해 지난해 자동차보험 부문에서의 영업적자가 6000억원을 넘었다. 접촉사고를 낸 운전자가 보험금 청구를 덜 하거나, 청구를 할 때 보험료를 올리면 손보사의 수익성이 개선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과도한 보험금 청구를 줄이려는 의도는 있지만 보험사의 수익에 도움을 주기 위한 조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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