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금의 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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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완곡한 부인 성명에도 불구하고 최근 정부일각에서는 앞으로 순금의 민간보유를 불허하고 18금 이하의 합금만 거래토록 하는 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그 귀추가 주목된다.
민간 금 거래 및 보유를 제한, 또는 금지시키려는 의도는 크게 보아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국내 금가가 국제시세에 비하여 근 2배나 되기 때문에 금 밀수입이 성행되어 이를 막아보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간 보유 금을 동원하여 대외준비로 활용하는 한편 산업자금공급원으로 삼자는 것이다.
순금 유통금지에 대한 이 같은 일부의 구상은 상공당국이 부인하고 있으므로 현재로선 확정적인 방침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69년의 금가파동 이후 이 문제가 계속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확실히 금에 관한 일부 구상은 민간보유 금의 수량이 많다는 가정이 성립되면, 외환문제를 해결하는 잠정수단으로 채택해 볼만한 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즉 민간보유 순금이 수억 달러에 이르고, 그것이 국민적 협조에 의하여 통화용 금으로 동원될 수 있다면 외환 애로를 일시적으로 완화할 수 있겠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 문제를 너무나 단순하게 생각한다면 적지 않은 파동을 일으킬 것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그 구체적인 정책이 결정되기에 앞서 다각적인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첫째, 우리 나라 금 생산실적은 62년의 3t 수준을 피크로 하여 계속 떨어지고 있어 72년에는 1t 이하로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특히 산금량의 절반을 점하던 「구봉」「무극」「덕음」 등 광산이 오늘날 폐광되고 있어 국내 산금량의 증가는 사실상 기대할 수 없는 실정이다. 이처럼 산금량이 축소되고 있는 이유는 생산비에 비한 금 매입가의 현격한 저위성 때문이다. 따라서 산금정책은 실질적으로 포기상태에 있는 셈이므로 금 거래규제법이 노리는 것은 민간보유 금의 화폐용 금화라 할 것이다.
둘째, 민간 보유 순금을 화폐용 금으로 동원하는 문제도 너무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즉 민간재산을 강제로 매입하는데 따르게 될 마찰도 문제지만, 매입가격을 어느 수준에서 결정하느냐도 큰 문제라는 것이다. 특히 금의 시중시세가 국제 금가의 2배 수준에 있는데 이를 통화당국이 매입한다면 IMF 금 평가대로 온스 당 38달러에 매입할 수밖에 없다. 사리가 그와 같다면 금 매입에 응하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시가의 50% 수준을 국가에 세금형식으로 납부하는 셈이 되는 것이며 때문에 심한 저항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다.
물론 금을 많이 보유하는 층은 상대적으로 부유층인 것이므로, 이를 일종의 부유세로 착주해서 이를 단행한다면 별개문제지만, 이런 방법은 자유국가로서는 어쨌든 비정상적인 조세징수 방식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끝으로, 외환준비를 위하여 많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이를 단행한다고 가정할 때, 그로써 과연 얼마만큼의 금이 동원될 수 있겠는가에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통화당국의 금 매입가격이 시가의 50% 수준이라면, 자발적으로 매입에 응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강제행위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실효를 거둘 수 없겠는데 구체적으로 강제수단을 동원한다 해도 얼마나 동원될 수 있겠는지 의문이다.
요컨대, 대외 지준수단의 보완방법으로서 금 매입을 강제해보겠다는 생각은 있음직한 일이나, 그 성과에 비해서는 너무나 많은 부담이 따르는 비현실적인 구상이라는 것이다. 민간 금 보유고가 최고 3∼4백억 달러 수준으로까지 추정되고 있는 인도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되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예로 보아 이 문제를 너무 가볍게 생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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