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워진 「은행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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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번 금융계 인사개편은 전례 없이 큰 규모일 뿐 아니라 몇 가지 새로운 인사원칙이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외환은행을 제외한 11개 국책 및 시중은행의 임원 89명 중 행장급 1명을 포함, 전체의 약 43%에 해당하는 38명이 퇴임했고 절반에 가까운 44명이 이동된 것이다.
이번 인사는 ▲2기 이상 책임배제 ▲은행간 수평이동금지 ▲경영평가기준 등 기본 원칙이외에 책임경영제를 위해 은행장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고 감독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각 은행의 감사들을 모두 개편한 점이다.
그리고 은행장의 경질을 최대한 피하고 어떤 이유에서든 경영실적이 가장 나쁘게 나타난 은행장 1명을 임기 전에 해임함으로써 임기에 불구하고 경영실적이 좋지 않으면 최고 경영책임자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결의를 명백히 표시했다.
따라서 책임경영제확립과 실적이 나쁜 은행장의 임기전 해임은 앞으로 금융운용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작년 10월 불건전채권 정리를 중심으로 한 금융정상화 조치가 있은 다음 정부는 3개 은행(산은·상은·서울은)장의 경질과 함께 3월 말까지 불건전채권을 책임지고 정리하겠다는 시한부 사표를 각 은행장으로부터 받았었다.
그러나 이 시한부 사표는 주총을 앞둔 지난 3월 불건전채권정리 시한을 6월 말까지로 연장키로 결의했고 이번 책임경영제강화의 동기가 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즉 6월말 시한의 불건전채권정리와 연결된 책임경영제강화는 은행법 상에 보장된 시은임원들의 임기보장까지도 포기할 정도로 강력한 추진력구축을 기도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불건전채권정리를 포함한 은행의 대출관리는 보다 강화될 전망이며 그 반사작용은 불황에 허덕이는 업계에 자금압박 용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많다.
또한 은행장들의 문책은 일단 6월 말 시한 이후로 유보된 것으로 볼 수 있어 연내에 행장급을 중심으로 한 2단계 인사개편이 단행될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뿐만 아니라 감사개편이 가져올 집행부에 대한 제동과 정부의 금융「체크」가 보다 강화될 전망이다.
시은감사는 한은에서, 국책은감사는 정부고위관사를 직접 파견한 것은 근본적으로 금융의 주축을 담당하는 시은 및 현업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불신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만큼 집행부에 대한 「체크」는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고 그 여파는 집행부의 업무추진력을 저해할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곤 있다.
따라서 금융쇄신이 금융의 안정성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며 일방적인 쇄신을 강요하는 것보다 자율성보강을 위한 환경정비가 더 효과적이라는 점도 강조되고 있다. <이종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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