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7)제26화 경무대 사계(64)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뒤바뀐 부통령>
이 대통령이 철기 대신 함태영씨를 부통령으로 택하게 된 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해 있다. 당시 국무총리였던 창낭, 내무장관 김태선씨와의 불화, 갖가지 모략, 철기에 대한 이 박사의 경계심, 함씨에 대한 대통령의 호감 등이 작용한 것이다. 모략의 주류는 족청이란 사병세력을 바탕으로한 철기가 부통령이 되면 권세를 휘두를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이 박사의 경계심을 자극하는 내용이었다.
철기와 사이가 좋지 않던 창낭과 김 내무장관은 철기의 선거 「포스터」사진이 크다는 등 갖은 험담으로 대통령의 경계심을 자극했다.
철기가 창낭과 사이가 나쁘게 된 원인은 알 수 없으나 정치파동 때 내무장관을 하던 철기가 창낭을 무시한 점과 창낭의 자유당 입당을 철기가 견제했다는 앙심이 상당히 작용했던 것 같다.
사실 철기는 정·부통령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무장관을 맡긴 했지만 자신이 총리 때 창낭을 외무장관으로 거느리고 있었다는 전력 때문인지 국무총리 대접을 하지 않았다.
한번은 철기가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는 번번이 참석치 않는다고 해서 창낭이 몹시 화를 내고 국무총리를 그만 두겠다는 법석을 피운 일도 있다.
게다가 직선제 개헌안을 추진하던 창낭 주도 원내교섭단체인 신라회가 자유당에 입당할 때 다른 의원은 문제가 없었으나 창낭에 대해서만은 입당가부를 심사해야 한다고 견제를 한 사건이 생겼던 것이다.
이런 사감이 겹쳐 창낭은 철기를 견제하게 된 것이다. 철기후임으로 내무장관이 된 김태선씨도 전부터 철기와는 사이가 좋지 않아 창낭에 가세했다. 경찰관을 시켜 철기를 감시하고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했다. 이것이 문제가 돼 김 장관은 선거만을 치른 뒤 내무장관 한달여 만에 다시 서울시장이 된다.
철기에 대한 모략은 이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라이벌」 후보였던 함치영씨의 움직임을 하나 소개하겠다. 함씨는 선거며칠 전에 이 박사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사신을 보내 철기를 지지하지 말도록 요청했다.
『이번 선거에서 각하의 가장 큰 위험상대는 조봉암입니다. 그런데 철기는 이 조봉암과 관련을 맺고 있을 뿐 아니라 백두진이 자금 총책임자로 있어 수십억을 마음대로 요리하고 있습니다. 또 철기는 공산당 혐의를 받고 있는 정국은이란 자와도 관계가 있어 사상적으로도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선거를 제대로 하려면 철기의 세력이 힘을 쓰고있는 대한청년단의 간부를 모두 바꿔야 할 것입니다.』
결국 이 대통령은 창낭의 진언을 암묵적으로 승인했다.
다만 철기 대신 함옹을 밀게 된데는 함옹이 구한말에 이 박사가 옥고를 치르게 될 당시 재판장으로 있으면서 도와준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8월5일의 선거결과는 총투표수 7백27만중 대통령에는 이 박사가 5백23만표, 부통령에는 함씨가 2백78만표로 철기보다 97만표를 더 얻어 당선했다.
국민은 물론 선거관리책임자인 창낭조차 잘 모르던 함치영씨가 며칠새에 뒤바뀌어 부통령이 된 것이다.
이런 곡절로 부통령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으나 철기의 이 박사에 대한 향심은 변하지 않았다. 또 여러 차례 모략이 들어온 것을 알면서도 변명하는 일이 없었다.
그후에도 자기가 사냥해 잡은 뜸부기를 『대통령 생각이나 혼자 못먹겠다』며 경무대로 가져 오곤 했다.
이렇게 1년 가까이 우여곡절을 겪어 대통령으로 재선되는 과정에 미국을 비롯한 외국사람들로부터 이 박사는 많은 비난을 받았다.
특히 정치파동 때는 우방의 여론이 물 끓듯 했다. 우방의 비난은 민주정치를 위해 「유엔」군이 피를 흘리는 마당에 이런 정치수법이 말이 되느냐는 얘기였다.
심지어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건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길 기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비난까지 받았다. 영국에서는 국방상을 파견했고 미국정부는 『욕심이 많은 늙은이』니, 혹은 『노망』이니 하며 비난했다.
특히 「무초」대사는 『언제 갈지 모르는 힘없는 늙은이가 욕심을 피운다』는 욕을 사석에서 퍼부었다. 이 말이 대통령 귀에 들어왔다.
이 박사는 「무초」대사를 혼내주리라 마음먹었다. 며칠 후 이 박사는 진해별장으로 「무초」 대사와 「밴플리트」·「콜터」 두 장군을 초청했다.
이 박사는 조그만 목선을 준비하고 이들에게 낚시를 하자고 권했다. 미군 PT정을 타고 멀리 나간 일행은 낚시를 위해 목선에 갈아탔다. 그날 따라 바람이 거세고 파도가 일어 배는 마구 흔들렸다.
이 박사는 배를 멀리 띄우라고 일렀다. 이 박사와 두 장군은 끄떡 없었지만 「무초」대사는 뱃멀미를 시작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아무말 하지 않고 낚시질을 계속했다. 배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자 「무초」대사는 마구 토해내기 시작했다. PT강으로 돌아올 때까지 「무초」대사는 토하다못해 바지에 배설까지 했다. 그야말로 반죽음이 된 것이다.
이 박사는 그 추한 꼴을 바라보다가 「무초」대사의 어깨를 치면서 『당신은 나이가 많은 나보다 약하구려』하고 따끔하게 비웃었다. <계속><제자 윤석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