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남덕현의 귀촌일기

"시골집은 시세가 얼마나 나갑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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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남덕현
귀농수필가

필자가 시골에 집 짓고 나서 종종 들었던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시세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오죽했으면 취득세를 내러 갔다가 턱없이 적게 나온 세금에 당황을 했을까. 건축비의 절반도 안 되는 감정평가액을 보고 나서 겁이 더럭 났다. 앉은자리에서 자산의 절반을 까먹은 셈이었다. 죽으나 사나 시골에서 살다가 죽어야 하는 운명임을 그때처럼 절감한 적은 없다. 시골집을 판 돈으로 어느 도시에서 변변한 집 한 채를 얻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필자는 시골에 집을 짓겠다는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배수의 진을 친다는 각오가 필요해!”

 생각해 보면 도시의 아파트도 ‘배수의 진’이기는 마찬가지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무너진 후로 ‘서울 아파트’ 팔아서 시골에 집 짓고 남는 돈을 쓰고 가겠다는 생각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공식처럼 되어 있던 재테크 방식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실질소득은 매년 감소하고, 대출이자는 오르고, 아파트 시세는 기대치만큼 회복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는 더 이상 튼튼한 보루가 아니라 살얼음이 낀 배수의 진이 되어버렸다.

 처남 집에 다녀오시면 장인어른이 꼭 하시는 말씀이 있다.

 “하룻밤 잘라믄 당최 시끄럽구 드러워서 잘 수가 읎어! 쏴아~허구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가 밤새 안 그쳐. 그게 맬깡(모두) 똥물 아녀? 공꾸리(콘크리트) 말구 유리루다가 아파트를 졌다구 생각혀 봐. 사방팔방 똥이 둥둥 떠다니는 게 빤히 보일 거 아녀! 갤국(결국) 위아래로 똥을 이구지구 사는 삯이 몇억, 몇십억이라는 건디 시상에 말이 되는겨?”

 세상 물정 모르는 시골 노인의 쉰 소리만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지구의 생명 가운데 집을 상품으로 사고파는 존재는 인간이 유일하지 않은가. 집이 삶의 안락한 보루가 아니라 배수의 진이 된 것은 자업자득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장인어른 말씀마따나 거미가 거미집에 걸려들어 말라 죽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사람은 자기 집에 걸려들어 이자며, 시세에 말라 죽는다.

 애물단지가 되어가는 아파트 때문에 고민을 호소하는 지인들이 늘어간다. 일찌감치 시골에 집 짓고 사는 필자가 부럽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난생처음, 선견지명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다. 하지만 속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집 한 채 빼고 나면 남는 것 하나 없는 배수의 진 속에 살기는 매한가지인 것이다. 다만, 하늘을 이고 지고 사는 호사를 누릴 뿐이고 그것으로 족하다.

남덕현 귀농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