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파동 재연되나" 법원 초비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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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법원 고위 간부들의 화두는 '사법 파동'이었다. 수원지법 안산지원 영장전담 판사와 피의자의 변호사가 골프.술자리 모임을 가졌다는 보도(본지 3월 6일자 6면)가 몰고올 파장을 예상해서다.

법관들은 특히 이번 사건이 1998년 의정부, 99년 대전 법조비리에 이어 노무현(盧武鉉)정부가 공언한 이른바 '사법개혁'의 결정적인 빌미가 될 것을 우려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사건의 전말 파악과 함께 사태의 추이를 예의 주시하고 나서 주목된다. 법조계는 이 사건을 계기로 판사와 변호사의 유착관계를 끊고 법관의 지위를 보장할 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동요하는 법원=수원지법은 비상이 걸렸다. 최병학(崔秉鶴)법원장은 6일 부장판사 회의를 긴급 소집, 판사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판사는 "영장전담 판사가 전직 동료 판사 출신으로 막 개업한 변호사와 어울린 것은 부적절한 행동이다. 하지만 이번 일이 사법부 개혁의 필요성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계기로 사법개혁론에 피동적으로 끌려갈 사태가 올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공보관을 통해 '해당 판사의 징계 검토'등 대응책을 서둘러 발표했다.

강경론도 많았다. 서울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이미 땅바닥을 기고 있다"며 "부적절한 처신을 한 판사를 징계하지 않고 전보조치만 하는 것은 사법부가 다시 한번 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울고법 판사는 "영장전담 판사는 짧은 시간 내에 구속 여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변호사의 변론내용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가능성은 상존한다"면서 "사법개혁의 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는 "여론의 추이에 따라 사법개혁의 당위성을 알리는 단초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민정수석실에서는 여론의 반응과 현재 사법제도의 문제점 등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 긴장하는 검찰=수원지검은 "검찰이 뒷조사를 한 뒤 언론 플레이를 했다"는 법원쪽의 비판에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검사를 안산지원에 보내 사건의 실상을 설명하는 한편 내사 내용을 언론에 유출한 인사 색출에 나섰다. 처벌까지 검토하겠다는 태도다.

한 간부는 "법원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수사가 제대로 될 수 없을 뿐더러 법원과 검찰이 힘겨루기를 하는 모습은 좋지 않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그러나 "영장 기각과 골프모임이 상관관계가 없더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 "판사.변호사 유착 끊는 계기 돼야"=대한변협의 도두형(陶斗亨) 공보이사는 "사건을 담당한 기철 변호사가 변호사 등록 전에 수임을 했다면 변호사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陶이사는 또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옷을 벗자마자 동료들의 방을 함부로 드나드는 등 변호사의 윤리와 법을 어기는 사례는 고쳐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판사가 나중에 모두 변호사가 되는 풍토에서 변호사와의 유착을 근절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판사는 없고 변호사만 있는 사회가 되는 것을 막으려면 법관의 임기를 보장해 변호사 개업을 현실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판사들이 성숙한 직업관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재현.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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