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북해도의 아이누 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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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느 곳에…, 「아이누」가 남긴 전설이 없을까.
원래 북해도의 주인은 「아이누」족이다. 당당한 골격에 잘생긴 얼굴. 털이 많은 종족으로 숱 많은 흑발에 안광이 예리하게 빛났다고 전해진다.
낭만적인 검은 눈동자로 자연을 우러러 살며 곰을 잡고 배를 띄우고 실피리(사적)로 호숫가의 석양을 노래하던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두터운 신앙심에 의리가 있고 정직하고 온순하여 예의가 바르던 그들을 망쳐 놓은 것은 본주인. 음험한 책략으로, 「아이누」의 단순하고 선량한 기질을 이용하여 형편없는 보수로 혹사함으로써 「아이누」족을 게으르고 쓸모 없는 사람들이 되게 만들었다. 그렇게 쇠퇴해 가는 그들의 멸종을 우려하여 일본정부는 1900연대에 북해도 구토인 보호법이라는 것을 선포했지만 현재 그 수효는 겨우 1만을 상회할 정도다.
대개가 본주 사람들과 피를 섞어 생활양식에서부터 언어·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동화되어 「아이누」를 식별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러나 이 눈 나라의 어느 곳엔가 그들의 체취가 남아 있을 것만 같아서 찾아 나서는 일을 쉽게 단념할 수가 없었다.
원시에의 향수랄까. 기계기름의 냄새가 배어 있지 않은, 문명의 때 끼지 않은 사람의 모습이 그리웠기 때문이다.
「아이누」를 찾으니까 사람들은 이상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해 보였다. 이제 북해도의 일제 속에서 「아이누」는 전설로만 남은 듯 그나마 퇴색해 가고 있었다.
백로(시라오이) 쪽으로 가면 만날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에 기대를 걸고 국철 버스에 오른 것은 오후1시.
시가지를 벗어나면 좀더 웅대한 자연을 볼 수 있으리라…. 자동차가 좀 더 많은 길을 달려가 주면 북해도 사람들의 보다 순박한 살림을 볼 수 있겠지…, 희망을 가졌었지만, 첫날 공항에서 탄환도로를 달리며 열심히 눈여겨보던 연도풍경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연맥이나 짚으로 만들었음직한 초가를 찾았으나 몇 백리를 달려도 구경할 수 없었다.
원경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설산과 금방 노루나 곰이라도 달려와 줄 듯, 평화스러운 설원이 아니었다면, 북해도에 대한 싱싱한 선입감이 가엾게도 구겨지고 말았을 것 같다.
기대했던 구수한 초가는 아니지만 이 곳의 지붕들은 대단히 다채롭다. 빛깔도 가지가지로 빨간색·남색·초록 등 활기 띤 원색이 눈 속에서 웃고 있었고 그 모양이며 경사도 가지가지다.
한겨울의 적설량과 그 중량을 생각해서 대개는 눈이 흘러내리기 좋은 경사로 지붕을 얹었고, 눈이 계속해서 내릴 때는 지붕 위의 제설작업이 큰 일 중의 하나다.
이러한 지붕들의 다양한 모양이며 빛깔은 흰눈 일색인 겨울의 무료를 달래기도 하겠지만 북해도 한여름의 청청한 연원에서도 더없이 아기자기한 조화를 이룰 것 같았다.
차창을 스쳐 가는 설경들은 그런 대로 변화가 있었다.
겨울을 견디는 나목의 숲.
설원, 그리고 그 저편으로 물러앉은 포근한 흰눈의 겨울 산. 백조라는 이름을 가진 호수의 쪽빛 물빛이 가슴을 아릿하게 훑으며 지나갔고 초토로 얼룩진 갯가에 경계표식을 이룬 초표들이 겨울바다의 쓸쓸함을 호소해왔다.
더러는 눈밭에서 머리를 치켜든 목책이 보였다. 그리고 그 눈밭에는 한줄기 멀리까지 부드럽게 포물선을 긋고 지나간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백노행 「버스」를 내린 것은 짧은 겨울 해가 벌써 조바심을 치기 시작한 무렵. 승객을 팽개치듯이 「버스」가 떠나가 버린 뒷자리에서 벌판바람에 갑자기 갇힌 듯 서있으려니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아이누」가 남아 있다는 마을은 아무런 표식도 눈에 띄지 않았다. 최신시설을 과시하는 「개실린·스탠드」와 가지런한 길가 가게…, 그리고 그 왼편도 오른편도 그저 눈 더미 일뿐. 몇 사람에게 물어서야 백노의 「뽀르도·고당」의 입구를 찾아 낼 수 있었다.
「뽀르도·고당」-「아이누」어로 커다란 호수의 마을이란 뜻이다.
종종걸음으로 눈길을 헤치고 철길을 건너서자니까 서양냄새가 물씬 풍기는 「드라이브·인」의 건물이 턱 가로막는다. 야릇한 배반감으로 그때까지의 기대가 상처를 입고 주저앉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식했던 것은 이쪽이다.
「뽀르도」호반에 「아이누」부락이 옮겨온 것은 소화 40년 5월. 불과 7, 8년 전이다. 결국…, 관광객들에게 그들의 생활을 소개하자는 것이 목적이었으니까 자연인 「아이누」는 그곳에도 없다는 이야기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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