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제자는 필자|<제26화>경식대 사계(7)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방미전야>㉮
이 박사의 정치구상은 초기의 정치 혼돈과 미군정의 방향착오로 숱한 장벽에 부딪쳤다. 공산당의 집요한 정치공작을 분쇄하기 위한 민족진영의 단합이 최대의 과제였지만 난마처럼 얽힌 단체들은 서로 반목했다.
모두들 정열은 넘쳤지만 정치현실에 대한 냉엄한 판단들이 부족하고 더러는 성급하기만 했다. 백범 같은 분도 임시정부 주석으로서의 구상을 현실화시키려 했고.
그나마 더욱 곤란한 것은 되지도 않을 좌우합작을 내건 미군정의 끈질긴 압력이었다.
이 무렵 이 박사는 산책을 하다가도 『하루속히 나라있는 국민이 되고싶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기도 했다.
이 박사는 틈이 나면 한시를 지어 착잡한 울분을 달래곤 했다. 그때 남긴 시의 하나를 여기 옮겨 본다.
원여삼천만
구위유국민
모년호해상
귀작일한인
(원컨대 3천만과 더불어 나라있는 국민이 되고싶다. 저문 해 바다 위에 돌아가 한가한 사람이 되고자).
이 박사의 생활과 성격의 한 단면을 소개하는데 꼭 필요한 것일지는 모르지만 이 박사와 하지 중장과의 관계를 얼마간 소개해야 될 것 같다.
해방된 그해 연말 미국무성은 하지 사령관에게 『2주일 안에 임시조선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미·소 공동위원회 조직을 위해 주 북한소련군 사령관과 회합할 것』을 지시했다.
12월30일 군정장관 아놀드 소장이『가까운 시일 안에 미·소 주둔군수뇌가 평양에서 만날 것』이라고 발표해서 민심은 분분했다.
이 박사는 공산당과 결별을 선언했으나 미·소 공위를 준비하던 군정은 이 박사에게 좌우합작을 단념하지 말고 계속 추구해주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 때문에 이 박사는 하는 수 없이 극좌파는 빼고 여운형 홍명희를 불러 송진우씨와 함께 돈암장에서 회의를 하게 했다.
그러나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몽양(여운형)이 『한민당 창당 취지문에 「여안사도여…」(여운형 안재홍 등 간사한 무리들이여)라고 되어있는데 어째서 나를 역적으로 모느냐』고 항의를 하고 고하(송진우)가 『인민공화국을 새로 만든 놈이 어째서 역적이 아니란 말이냐』고 되받아 15분간이나 마주앉아 험악한 입씨름이 벌어졌다.
결국 몽양은 『나는 다시 여기 안 온다』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는데 너무도 흥분한 나머지 자기 신발을 찾지 못해 한참동안 현관에서 허둥거리던 일이 기억난다.
이래서 두번째 시도도 실패하고 전국 곳곳에선 반탁 데모의 불길이 치솟고 있을 때다.
미군정은 미·소 공위의 합의라 해서 이른바 모스크바3상회의 결정(신탁통치안)을 지지하는 정당·사회단체만이 미·소 공위에 참석한다는 이른바 5호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을 본 이 박사는 불같이 노해 하지를 찾아갔다.
『장군의 어깨에 단 별은 세 개밖에 안 되는데….』
『내 어깨의 별과 5호 성명과 무슨 상관이라도 있단 말씀입니까?』
『장군을 야심만만한 군인으로 보고 있었는데…. 장군은 야심을 이루기엔 틀렸읍네다.』
『닥터·리, 또 나를 모욕 주려고 그러십니까?』
『별 네 개면 대장이요, 다섯 개 달면 원수고…. 앞으로 별을 더 달고싶으면 그래가지고 되겠습니까?』
하지는 이 이상의 모욕이 없었기 때문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했다.
『미스터·하지, 내 말 더 들으시오.』
『뭐라고 말씀하셨읍니까?』
『미스터·하지라고 불렀습니다. 미스터·하지는 내 아들 뻘밖에 되지 않습니다. 대장이나 원수가 되려면 정략적인 머리도 있어야지! 모르면 나한테 물어서 군정을 펴 가십시오』.
『닥터·리, 나의 상관은 미국무성이나 맥아더 원수이지 닥터·리는 아닙니다.』
『유능한 정략가는 그런 말을 안 합니다. 충고 받아야 할 것은 받는 게 유능한 정략가가 되는 첫 길입니다. 그렇게도 내 말 알아듣지 못하면 미국무성에 전보를 쳐서 바보 같은 장군을 소환하라고 할수밖에 없읍니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비록 원인은 미국무성의 지시에 있었지만 이 박사와 하지의 관계는 이제 화해할 여지조차 없는 것 같았다.
이런 관계 때문에 나중에 하지는 이박사의 방미를 어지간히도 끈덕지게 방해했지만….
이 무렵 이 박사는 미국무성 사람들을 참 미워했다. 그것은 국무성이 하지에게 좌우합작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이 박사는 심지어 『미국시민은 그렇지 않지만 국무성의 ○○가 나빠 그렇다』고 성명 속에 이름을 지적하면서까지 내놓고 욕을 했다. 입장이 난처해진 하지는 『제발 이름을 지적하면서까지는 비난하지 말라』고 이 박사에게 하소연을 한 기억이 난다.
이때부터 운동을 겸해서 해온 이 박사의 장작패기가 훨씬 잦아졌다. 장작을 패고 나면 이 박사는 무언가가 후련한지 기분이 좋아했다. 아마 마음먹은 바가 하지와 좌익들의 방해 때문에 잘 안되자 그런 답답하고 우울한 심정을 도끼로 장작을 쪼개는 것으로 달래는 듯 느껴졌다. <계속> 【윤석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