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7천명의 고교 낙방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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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후기 고교 입시의 합격자 발표를 계기로 올해 고교 입시는 일단 매듭을 짓게된 셈이다. 그렇지만 서울의 경우 올해에는 무려 5만7천여명이라는, 전무후무할 다수의 낙방자를 내어, 이들을 당장 어떻게 할 것이냐가 중대한 사회 문제화하고 있다.
집계에 의하면 올해 서울 시내 남녀 고교의 총 모집 정원은 5만7천4백10명 (전기 1만7천4백50명·후기 3만9천9백60명)인데, 여기 전기에 11만5천6백64명, 후기에 9만7천1백명의 지원자가 각각 몰려, 결국 5만7천1백83명이 낙방의 고배를 마시고 다시 내년을 기약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러나 올해 서울의 고교 입시에서 이처럼 한해의 총 모집 정원과 맞먹는 다수의 낙방자가 생겼다는 것은 그 문젯점이 내년까지 이월된다해서 결코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데서, 지금이라도 당장 어떤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임을 지적해야할 것 같다.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한 근본 원인은 한마디로 말해서 올해 서울시 교위 당국의 학생 수용 계획과 「쉬운 문제」 출제 원칙에 큰 오산이 있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올해 서울의 남녀 중학 졸업생 총수는 모두 8만6천2백46명인바, 그중 80%가 진학을 희망했을 경우 그것만으로도 서울 시내 고교 수용 능력은 최소한 7만2천명 (l천2백 학급)이 돼야할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 교위가 올해 인가한 5만7천4백10명 (9백70 학급)의 모집 정원은 처음부터 과소 책정된 것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올해에는 여기에 더하여 예측을 크게 뛰어 넘고, 약 4만명의 지방 중학 출신자들이 살도, 결국 전기한 바와 같이 5만7천명이라는 한해 모집 정원 총수와 맞먹는 낙방생이 나고야만 것이다. 이것은 입시 문제의 쉬운 문제 출제 원칙을 절호의 기회로 삼은 지방 학생들이 대거 서울에 집중했기 때문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들 낙방자의 구제 문제는 비단 낙방자 개개인의 불운을 구제한다는 뜻에서뿐만 아니라, 내년 이후 더욱 가혹해질 우리 나라 고교 입시 경쟁을 미리 예방하기 위해서도 부 가결한 교육 행정상의 중점 시책이어야 할 것이다.
구체적인 한 방법으로서는 서울 시내의 모든 고등학교가 올해에 한하여 학급당 학생 정원을 현재의 60명에서 65명으로 5명씩 늘리도록 긴급 조치하는 것이 어떨까도 생각된다. 이 경우 교실이 여유 있는 학교는 이 조치로써 늘어날 인원만큼의 새로운 학급 편성을 해도 좋을 것이나 그렇지 못한 학교도 올해 1학년에 한하여, 65명 정원의 학급 편성을 하게 되면, 그것만으로써도 약 5천명의 낙방생이 구제될 수 있겠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긴급조치를 취할 경우 신 학년초까지의 시간적 촉박성을 감안, 새로운 입시 결과는 생략키로 하고, 이미 실시한 전·후기별 입시 결과를 그대로 활용함으로써 낙방생 중추가 입학자를 결정함이 좋을 것이다.
또 한가지 당국으로서는 서울 시내 전 학교 인구의 수용 계획 자체를 재검토함으로써 내년도 이후 또 다시 올해와 같은 실태가 없도록 배려하여야 할 것이다.
본래 자유로운 「모빌리티」가 인정되는 민주 국가에서 지방 고교 출신자의 서울 전입을 전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올해와 같은 무절제한 유입 현상만큼은 당연히 억제되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대다수의 학교인 공립 중·고교의 경우, 그 운영은 거의 전적으로 지방 자치 단체의 재개에 의존하는 것인 만큼 타 시·도 학생의 무제한적 유입이 이미 세워 놓은 수용 계획 자체에 근본적인 차질을 가져오게 해서는 안되겠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 교위가 올해 채택한 지나치게 쉬운 시험 문제의 출제 원칙을 그대로 고수할 경우 이를테면 입시의 전국 일원화 현상을 조성, 이 때문에 지방 중학 출신자가 너도나도 서울에 진학하려는 경향이 더욱 조장될 것임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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