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신년특집 금강산-분단27년…영산 1만2천이 바로 눈앞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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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
금강이 무엇이뇨
놀이요 물이로다
돌이요 물이러니
안개요 구름일러라
안개요 구름이어니
있고 없고 하더라.
이것은 내가 일찍 1930년 여름, 금강산에서 읊은 노래다. 금강의 황홀 신비한 경지, 움직임과 고요함, 있고 없음을 자유자재로 하는 것을 말로써 그려본 한 절이다.
그러기에 예부터, 산의 신비가 무엇인지, 산의 오묘한 뜻이 무엇인지, 대자연의 참모습이 무엇이며, 진선미성의 극치가 무엇인지를 보고, 듣고, 알려하거든 금강을 찾으라 했고, 또 금강을 못 본 사람이면 산을 이야기하지 말라고도 했었다.
백두의 큰 줄기가 장백산맥으로, 그것이 다시 반도의 동쪽을 타고 내리며 이 땅의 등뼈 태백산맥이 되는데, 그것의 허리춤에서 한번 꿈틀하며 고개를 쳐든 것이, 솟고 빼어나 한껏 호사스런 「산의 왕자」가 되어, 억천만년에 이 나라의 둘 없는 보배가 된 것이다.
『고려나라에 태어나서 금강산 한번 보았으면!』(원생고려국 일견금강산)
이것은 일찍 고려시대 이후로 전해오는 중원대륙 사람들의 소원으로서, 진작 5백년 전 태종실록(4년9월 기미조)에 까지 적혀 있음을 본다.
이 나라는 그야말로 금강산 때문에 중국인들조차 그렇게도 부러워하고 태어나고 싶어하던, 바로 그 고려국이요, 그러기에 다른 것은 다 제쳐두고, 금강산 하나만 가지고서도, 이 나라에 태어난 보람을 느껴야할 우리들이다.

<우리의 금강인데 못가고>
그러한 나라가, 왜 오늘은 세상에 아무도 부러워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고, 아니 그보다도 오히려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조차도 스스로 원망하며 어디로고 다른 나라로 달아나려고만 하는, 지옥처럼 여기는 나라가 되었는고.
지난날 일제의 발이 이 땅을 짓밟았을 적에도, 금강산만은 마음대로 오갈 수가 있었고, 또 그때부터 우리는 금강산을 「한국의 것만이 아니라 세계의 것이니라」고까지 자랑했었다.
그랬건만 일제의 발이 물러간 오늘인데, 왜 우리는 우리의 금강을 갈 수도 없고, 또 금강산 그것조차도 세계의 것이기는커녕, 도리어 한국의 것도 되지 못하고, 가련하게도 한쪽 모퉁이에서 붉은 무리들의 감시를 받는 「수인의 신세」가 되었느냐는 말이다.
지금 내 눈앞에 부채살처럼 펼쳐지는 금강의 모습! 세존봉입네, 관음봉입네, 집선봉입네, 옥녀봉입네, 일출봉 월출봉에 백마봉 수선대를, 하루 한 봉우리씩 올라도 백년을 삼분해야 한 바퀴 돌 수 있는 1만2천봉!
은서들, 금서들을 짚어 오르고 기어오르고, 비로봉 마루턱에 올라, 이리로 보면 내금강, 저리로 보면 외금강, 그것도 모자라 신금강이니 해금강이니, 바위 한덩이, 물 한 굽이, 언덕 한자리, 골짜기 하나마다, 멋진 이름을 안 붙인 곳이 없는, 질번거리는 금강의 잔치!
금강이란 이름밖에도 상악이니, 기단이니, 봉래니, 풍악이니, 개골이니 하며 별명조차 많이도 가진, 우리 겨레의 사랑의 대상자 금강산이다.

<봉우리마다 조상의 입김>
어찌 그뿐이랴. 금강은 실로 오랜 옛날 예국의 판도 속에 있었던 그때부터 삼국, 고려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이 대대로 거기 가서 국민정신의 수련을 쌓고, 민족신앙의 예배를 올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기에 거기는 우리겨레의 「예루살렘」이오, 「메카」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곡은 「인간정토」란 이름으로 불렀었다.
거기 화랑들의 향기론 자취는 지금도 기이한 봉우리마다 깃들었을 것이요, 신화전설, 인간역사, 시인 가객들의 노래와 이야기들도 만폭동·옥류동 물소리 속에서 들릴 것이다.
그같이 민족의 얼이 서려있는 아름다운 우리 금강을, 해방된 우리 민족이 마음껏 누려, 금강이 내 지식 속에 들어오고, 내 사랑, 내 생활 속에 들어왔더면, 우리 문학, 우리 철학, 우리 종교, 우리 민성민속 등 문화 전부가 오늘과는 전연 다른 위치에서, 세계에 내어놓을 빛나는 그 무엇을 자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헛되이 잃어버린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깝고 분하냐. 생각할수록 원통하기 그지없구나.
그러기에 지금부터라도 헛 세월을 더 보낼 수는 없다. 인제는 정녕 가야겠다. 금강에게로 가야겠다.
금강아 너, 거기서 기다려 다오.

<퇴계도 한평생 그리고>
여기서 생각나는 옛 이야기 하나―
일찌기 퇴계 선생이 금강산 구경길을 떠나는 그의 제자 조월천에게 보낸 편지 속에 이런 귀절을 적었었다.
『금강과 경포는 내가 한평생 사랑하면서도 얻지 못한 것인데, 이제 그대 손에 먼저 들어가는 걸 보니, 늙은 나의 부러움이야말로 새장 속의 학이 구름을 바라보며 펄펄 날아가는 것만 같음을 어찌하랴.』
(풍악경포 평생소권권이부득자 금선입군수 노부흠선 진야농학 망운이분비 내하내하)
『산수 찾는 소원이야 어느 누가 없으리마는, 한번 띠끌 속에 발이 빠지고 나면, 그 소원을 이루는 사람이 적느니라. 그대의 이번 걸음을랑 꼭 놓치지 말게.』
(산림지원 수독무지 일실각진중 능수기원자선의 군지차행 시불가실)
『그리고 늙은 나인들 또한 어찌 이렇게만 지나다 말수야 있겠는가. 매양 경치 좋은 군데를 만나거든, 날 위해 잠깐 서로 기다려 달라하고, 내 걸음이 더딘 것을 사과해주게.』
(노부역안능종수역역어차야 매우명구 위아호상대 이사기지지야)
얼마나 멋있는 글인지 모른다.
그런데 그날의 퇴계는 금강산 가는 제자가 있었기에 「기다려달라」는 말이라도 전할수가 있었지마는, 오늘은 아무도 내 심정, 내 말을 전해줄 사람조차 없는 그것이 더 슬프지 아니하냐.
그러나 간절한 목소리는 귀신도 듣는다거늘, 내가 하는 이 말을 신령스런 금강산이 못 들을리 없으리라.
금강아 너, 거기서 기다려다오.

<네 살갗 닿을 날 와야한다>
내가 네게로 가마. 분명히 가마. 맹세라도 짓고 말고. 내 눈으로 너를 보고, 내 손으로 너를 만지고, 내 코로 네 몸 냄새를 맡고, 내 입과 가슴으로 네 입술, 네 살갗에 맞비비는 날이 와야한다. 그날이 꼭 우리에게 와야한다.
네 이름만 불러보아도 행복이요, 네 모습을 그려만 보아도 행복이요, 네가 거기 있거니 하고 믿기만 해도 행복인데, 정작 서로 만나서 껴안고, 뒹굴고, 네 품에 안겨서 노래하다 잠들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그 행복, 그 기쁨이 얼마겠느냐. 생각만 해도 숨이 가쁘다.
금강아! 너는 나의 사랑, 나의 님!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에, 나는 그 권리를 행사하러 가야하고, 내 너를 위해야 할 의무가 있기에, 나는 그 의무를 행하러 갈 것이다.
금강아 너, 거기서 기다려 다오. 내가 가는 날까지, 너, 거기서 손꼽으며 기다려다오.
―1972년 첫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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