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희<작가>|베푼다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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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두발로 걸어다니는 사람, 그 중에서도 더 못 가진 듯 싶은 사람들 주머니의 얼마 못되는 돈이 자선냄비에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자선냄비 같은 것이 눈에 보일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하루 종일 딸랑딸랑 인정을 호소하는 한 구세군이 한 말이다.
내 배가 부르면 종의 배가 고픈 줄 모른다든 가. 자신에게 흥청거리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베푼다는 소리를 틀어 본 기억이 없다. 자신에게 인색한 사람이라야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흔히 들어왔다.
10년 동안을「땅 당」바지 한별로 지내며 장학생을 기른다는 분이나, 이웃 나라의 일이지만 도시락을 팔아가며 살아가던 구두쇠 노인이 1억 원의 유산을 남긴 채 가난해서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 장학금으로 써달라고 했다는 것이나 또 내가 알고 있는 분 중에도 항상 베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분들은 베푼다고 해서 자리가 나는 것도 아니었다. 베풀면 베풀수록 더욱 풍성함이 그 자리를 메꿔 주었다.
우리에게 베풀 일이란 얼마든지 있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더라도 그들 나름대로 그 범위 안에서 베풀 일이 있다.
가령 시장에서 찬거리를 구하는 경우에라도 조금은 베풀 수가 있다. 가장 초라하게 놓고 앉은 할머니에게 제 값 이상의, 단 십 원이라도 더 놓아들인다면 초라한 할머니는 부자나 만들어 준 것 같이 기뻐한다.
이런 거야 찬 손을 따사롭게 녹여주는 정도밖에 안 되는 일이겠지만 꽁꽁 얼었던 손이 녹으면서 전신으로 스며는 따사로운 정을 느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남들보다 더 못 가진 축에 끼여 있는 내 어머님은 무엇이 생기면 남에게 잘 주었다. 옷가지 같은 것을 입지 않고 남에게 주는 때면 내가 꼭 한마디씩 했다. 그러던 어머님은『옷이 모자라서 못살겠느냐』고 했다.
그땐 그 말씀을 깊이 깨닫지 못했으나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과연 옷이 남았다.
옷이 모자라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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