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거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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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올해도 역시 많은 아쉬움을 남긴 채 한해가 저물어만 간다. 이루지 못한 잡다한 계획들이 하나하나 되 살아나 나를 온통 휩싸는 것 같다. 며칠 안 남은 「크리스마스 망년회가 가뜩이나 오그라든 어깨를 더욱 움츠리게 한다.
작년 이 맘때는 세모에 들떠 친구들과 함께「코트깃을 올리고 갈곳 안갈곳을 무턱대고 다니며 함박눈이 오기를 가슴 죄며 기다렸는데 한해 동안에 내가 그렇게 철이 들었다는 것일까. 자구만 가라앉는 심청으로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 어느 해이던가. 그야말로 함박 같은 눈송이가 펑펑 내리던 성탄절 저녁에 기쁨에 넘친 난 환호성을 지르며 친한 친구 영아의 집을 찾아 갔었다.이 백찬 가을 같이 나누고픈 욕심에서였다.
이러나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친구는 말했었다.
『얘,난 아무리 눈을 맞아도 배고픔을 참을수는 없울거라고 생각해.』 시무룩 한 채 한마디 던지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랜후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야 하게 된 그 집안 사정을 알고 올해의 올림픽과 함께 까마득히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렸었다.
그런데 요즈음 내 머릿 속에서 멀리 밀려났던 그 친구와의 일이· 새삼스럽게· 되살아옴은 무엇 때문일까. 휜 눈을 맞으며「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며 거리를 누비고싶고 하루밤을 꼬박 새워 새해아침을 맞이하기위한 섣달 그믐날밤의「프로그램 짜기에 고심하던 나.그러던 나는 마치 낯선 사람처럼 저 멀리에서 그림자처럼 서성거리고 또 하나 새로운 내가·이재 아쉬움과 회상에 잠긴 세모를 쏜 약처럼,마시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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