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약 향한 모색과 방황|과학기술계 71년 결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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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1년에도 우리 나라 과학기술계는 비약을 보지 못했다. 과학기술계에서는 하루아침에 비약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일리 있기는 하지만 그 말도 오랜 세월에 걸쳐 되풀이 듣다보면 진실성이 적어지는 것 같이 생각된다. 과연 우리 과학기술계는 아직도 비약을 할 시기가 아니고 모색과 방황만을 되풀이해야 할 처지라는 것인가.
과학기술계의 비약이란 어떤 것이냐고 한다면 분명한 대답이 안나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목에서의 연륜과 연륜사이가 유난히 벌어지는 경우가 있듯이 과학기술계의 실적을 결산해 보면 종래와는 다른 큰 성과가 나올 때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야구에서의 「홈런」모양 국내외 과학기술계의 이목을 끌만한 연구성과가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산업계에서 연구를 실용화하여 유달리 재미를 많이 본 예가 많다거나, 외국의 저명한 과학기술 「저널」(정기간행물)에 실린 국내과학고의 논문수가 눈에 띄게 많아 졌다거나, 연구성과가 국내외에서 현저할 정도로 많이 특허를 땄다거나 하는 것 등등이다. 국내에서 연구된 것을 외국회사에서 막대한 「로열티」를 내고 가져가는 것도 「홈런」과 같은 「히트」로 칠 수 있다.
국내 여러 학회에서 발표되는 논문의 수가 늘었고 질도 향상됐다고 말해지기는 하지만, 해방 뒤 26년이 지나 달에 사람이 가고 화성을 지구의 한 지역같이 탐사하는 이 과학기술시대에 그 정도로 만족한다면 반성해볼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대우가 나쁘고 연구비가 모자라며 시설이 제대로 안 갖춰졌다는 불리한 여러 조건이 비약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정치가 실업가들도 그러한 현황을 좀더 진지하게 직시할 필요가 있을지 모른다.
사실 외국의 1개 중심기업의 연구비밖에 안 되는 것을 전국 과학기술계에 뿌려놓고 비약을 기대한다면 멍청이 소리를 듣기 딱 알맞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체육계 같은 데서도 해방이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사람이 안나오지 않았느냐고 자위하는 과학기술자가 있을 수도 있다.
과학기술계의 비약을 가로막는 조건이 한두 가지가 아닌 것은 쉽게 인정되는 일이지만, 그래도 비약을 위해 몸부림치고 뛰고 해야만 언젠가는 진짜로 비약을 보게 될 것이다.
하긴 새로 취임한 최형섭 과학기술처장관이 기구를 개편하고 연구로 지급 방법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보조단체 수를 크게 줄이고 12년의 연륜을 새겨온 원자력 청을 폐지하고 연구자들의 대우와 연구비를 보장하는 법인체인 한국원자력 연구소를 만들려 하는 것 같은 것도 비약의 시기를 당겨보려는 시도의 일단이라고도 볼 수 있긴 하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가 결실을 맺으면 정치가들이나 실업가들이 과학기술이야말로 경제성장을 위한 「엔진」이라는 점에 대해 좀더 깊은 인식을 할 것이 요청된다.
「아폴로」계획은 고 「케네디」대통령의 유명한 우주단신(60년대에 인간을 달에 보냈다가 안전하게 귀한 시키겠다)에 의해 힘차게 발진했고, 일본선 핵연료·동력로개발사업단에 대해 10년간 최소 2천억원을 쓰라고 한계를 정해준 결과 최근엔 매년 2백50억원씩을 쓰면서 연구개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외국의 실업가들은 회사가 불경기일 때일수록 연구소를 자주 찾는다고 한다.
과학기술계의 오랜 소원이었던 과학기술 「센터」건물을 기공식만 해 놓고 정부와 산업계의 냉대로 방류상태에 있는 것 같은 것도 과학기술을 존중하는 나라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일이다. 「레다」니 「페니실린」이니 「트랜지스터」니 「레이저」발생장치니 하는 것같이 세상을 흔드는 연구성과를 한번에 기대할 수는 물론 없다.
그런 것이야말로 야구장 밖으로 멀리 공을 날리는 것 같은 대「홈런」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많은 과학기술자가 적어도 안타는 치도록 노력하되 2루타, 3루타는 눈에 띄게 많고, 더러는 「홈런」을 치는 정도로 과학기술계가 활기를 띤다면 그것도 비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자 각자가 크게 분발해야 하지만 좋은 풍토를 만들어주어야만 특수성을 갖고 노력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가까운 앞날에 하나의 과학기술계에서도 머리를 숙일 정도의 대「홈런」이 나올 것이 틀림없겠다. <이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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