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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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네쪽(저쪽)에 가서 이야기돔(좀) 하자우. 』
『뭔 얘기를 하잔 말이냐?』『말 돔(좀)똑똑히 하라우. 왜 그따위 왜곡보드 하니?』『왜곡보도가 뭔지나 아니?』『더게 (저것이) 데일 (제일) 악·질이야. 둑여라(죽여라). 』『왜 들 못나게 구니. 그럼 너희들 평양방송같이 떠들어대야 똑바로 하는거란 말이냐. 되지도 않는 소릴‥ 』
17일 상오 11시40분 판문점일각의「스냅」. 결국 족비는 활극으로 확대되었다. 어느쪽이 우리기자인지는 대화의 첫마디만 보아도 알만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 신문에 판문점금익실에선 남·북역 대의가 『과오방문이냐, 자전왕내냐』를 토의했다고 있었다. 문박는 활떼의 승구가 아니라고「왜곡보도 라는데 있다. 우선 그쪽의 기자들은 회담의 상황을 보도하면서 얼마나 정치성을 배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병역회담을「비정치적」이라고 못 박을수야 없지만, 적어도 적십자 정신의 매충은 그런 한계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데 있다. 어느쪽 대표들이 그런 노력을 하고 있을지는 불을 보듯이 훤하다.
만일 어느 기자이든 이 회담의 분위기를 개치선전의 무대로 이끌어가는 보도에 열중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비간을 받을 만하다. 말하자면 그런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이 회담의 승패는 달려있을것같다.
서독의「브란트」수상이 양독회담을위해 동독을 방문했을 때, 독일의 기자들은 정치적 감우의 보도는 스스로 자제했었다. 어느쪽의 주민도 서로 승악하는 표정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은 『빌리!빌리!』하고 외쳤었다.
철아를 자아내는 것은 『빌리!』라는 발지만 가지고는 동·서독의 어느 수감을 지칭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였다. 「빌리· 브란트」는 서독기관의 이드히며 「빌리·슈트프」는 동호수감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민족」이라는 감동적 어휘에 휘말려 「센티멘틀」한 보도는 삼가야한다. 우리의 현실은 아직도 차가우며, 남북의 긴장은 도리어 하산되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민족상잔의 그 뼈아픈 기전은 좀체로 잊혀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서로의 노력과 슬기로 극복해야 할 일이지, 직면해야할일은 아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간절한 것은 평화를 모색하는것이며, 전말을 부채질하는 길은 결고 아닌 것이다. 북의 기자는 무엇이 왜선이며, 무엇이 진실인지를 차제에 분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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