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문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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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방금 가지를 떠난 플라타너스의 잎이
인연을 끊은 아픔의 몰살에 흔들리면서
빈 가지로 되돌아올 듯 망설이다가
허공 속의 골짜기를 더듬어 내리다가
허공 속의 모퉁이를 휘어 돌다가
허공 속의 언덕을 오르내리다가
마침내 길가는 여인의 허리께를 스친다.
바람은 대한문을 여전히 드나들지만
불탑 위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지만
이 억겁의 아픔을 달랠 수는 없나보다
아직은 떨고있는 빈 가지를 두고
잎은 비명을 지르면서 굴러 가다가
다른 먼 세계를 찾는 듯 헤매다가
길섶에서 죽은 듯이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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