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인사원칙 흔들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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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새 정부의 인사와 관련한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부총리 인선 난항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아들의 이중국적.병역면제 의혹이 대표적인 예다.

경찰청장 임명 절차의 적법성과 청와대 정식 발령 전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비밀 대북 접촉을 한 나종일(羅鍾一)국가안보보좌관의 자격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시민단체에 휘둘린 인사=노무현(盧武鉉)대통령은 밀실인사 폐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5단계에 걸친 장관인사 추천 및 심사 시스템을 마련했다. 첫 단계인 온.오프라인의 장관후보 추천이 시작된 것이 지난 1월 10일. 5일 현재까지 54일이 지났지만 교육부총리감을 확정하지 못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교육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이 높고 기준이 까다로워 졸속으로 임명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인선 지연으로 인한 교육계 내부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준비 부족 및 실기(失機)에 대한 비판을 면키 어렵다.

한국교총 관계자는 "시민단체의 반발을 예견하고도 오명(吳明) 아주대 총장을 내정했으면 밀고 갔어야 했으며, 사전에 예상을 못했었다면 문제"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네티즌으로부터 비슷한 내용의 반발에 직면한 김우식(金雨植)연세대 총장도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수도권 의원은 "익명의 인터넷 인민재판에 의해 국가 대계가 흔들리는 전례를 만들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사전 검증작업에서 진대제 정통부 장관 아들의 국적 및 병역문제를 파악해 놓고도 인사를 강행한 점은 의아하다는 견해가 많다. 陳장관에 대한 청와대의 '감싸기'에 대해선 "도덕성에 대한 원칙이 이중적이 아니냐"는 비판이 팽배하다.

임기보장 여부도 오락가락=대통령직 인수위에선 장관후보 추천을 받으면서 새로운 금감위원장과 공정거래위원장감도 추천을 받았다. 교체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던 셈이다. 盧대통령은 수차례 임기가 남아 있는 자리는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정부 출범 후 조금씩 바뀌었다. 정찬용(鄭燦龍)인사보좌관은 3일 임기직과 관련해 "대통령과 잘 안맞을 경우도 있는데, 그럴 경우 모양 좋은 결과가 도출되길 바란다"면서 사실상 자진 사퇴를 유도하는 발언을 했다.

대통령은 임기보장 원칙을 강조하고, 참모진은 외곽에서 퇴진을 압박하는 듯한 모양새다. 결국 두 자리는 4일부터 교체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비(非)임기직 중 국정원장의 경우도 유임과 교체 사이를 오락가락했다. 인선기준 역시 "실무형을 쓰겠다"(2.27 조각 당시 盧대통령)는 공언과 달리 4일 만에 '거물급의 코드(철학)가 맞는 인사'로 바뀌었다.

절차 무시 논란=3일 최기문(崔圻文)경찰청장 지명 과정에선 경찰청법에 정해진 경찰위원회의 동의를 얻지 않은 채 내정 사실을 발표했다가 경찰위원회 권한을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청와대는 4일에야 소급처리를 위한 경찰위원회를 열었다.

송경희(宋敬熙)대변인은 5일 "내정 발표 후 경찰위원회의 동의를 얻어도 권한 침해가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 관계자는 "사전 동의가 아닌 사후 동의는 법취지를 무시한 것"이라고 했다.

영국대사 신분이던 나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이 청와대 정식 발령(2월 23일)사흘 전에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와 접촉한 것이 어떤 자격이었는지, 또 그 같은 접촉이 당시 당선자 신분이던 盧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등도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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