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비로 옷 사 입고, 교사 수 속여 보조금 타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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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경북의 H어린이집 원장은 아이들 급식·간식비로 매달 부모들에게 돈을 받아 고스란히 자신의 옷과 구두를 사는 데 썼다. 갖고 싶은 도자기도 구입했다. 또 어린이집에 다니지도 않는 아이 13명과 보육교사 1명, 보조교사 2명의 이름을 허위로 등록해 놓고 보조금을 타냈다.

 경기도 용인의 K어린이집은 안전 관리가 엉망이었다.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냉장고에는 유효기간이 표시돼 있지 않은 음식 재료가 가득했다. 매일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통학버스 운전기사의 성범죄 경력 조회도 하지 않았다.

 보육료 빼먹기와 허술한 안전 관리 등 어린이집의 비리 행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6월부터 두 달간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어린이집을 특별 점검한 결과를 6일 발표했다. 어린이집 불법행위가 심각하다는 지적(본지 5월 6일자 1·4·5면, 7일자 1·3면)에 따른 점검이었다. 이에 따르면 점검을 받은 전국 어린이집 600곳 중 216곳(36%)에서 법 위반행위가 적발됐다. 조사 대상 어린이집 3곳 중 한 곳 이상이 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그간 민원이 제기됐거나 보육시스템을 모니터링해 부정이 의심되는 곳을 대상으로 집중 점검했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집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비리는 회계서류를 조작하는 것이다. 원장이 정부 보조금을 개인 돈으로 쓰거나 허위 영수증을 만들어 빼돌리는 경우다. 전체 적발건수(408건)의 19.1%(78건)를 차지했다. 서울 강남의 한 민간 어린이집 보육교사 김모(34)씨는 “원장이 자기 손자에게 장난감을 사 주고 교구비로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어린이집에 다니지도 않는 아이나 교사를 등록해 두고 보조금을 타먹는 경우도 흔했다. 보조금 부정 수급으로 적발된 곳이 52곳(12.7%)이었다. 16개월 된 딸을 둔 회사원 서모(32·서울 영등포구)씨도 얼마 전 어린이집 상담을 갔다가 이런 제안을 받았다. 서씨는 “내년 3월부터 딸을 어린이집에 보낼 예정이라고 했더니 그땐 자리가 없을 수 있다며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 일부를 떼줄 테니 미리 이름을 올리자고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5월 말 당정 협의를 열고 어린이집에 대한 감독과 처벌을 강화하는 ‘안심보육특별대책’을 발표했다. 그 결과로 8월 5일부터 어린이집 평가 인증 세부 결과가 인터넷(아이사랑보육포털·복지부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올해 말엔 특별활동비는 물론 법을 위반한 어린이집과 원장·보육교사 명단도 공개목록에 추가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회의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인력 부족 등으로 어린이집 관리감독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이언주 의원실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어린이집(4만2527곳)의 13.4%가 1년 동안 점검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평가방법도 여전히 서류 중심으로 이뤄진다. 미리 통보한 뒤 현장을 방문하는 식이다. 김통원 성균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어린이집 평가방식이 15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실질적인 평가시스템을 통해 어린이집 관리감독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문희 육아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어린이집 대부분이 소규모 자본의 생계형인 만큼 단속을 강화하고 벌금을 물려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에 더 힘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김현준 보육정책과장은 “내년엔 국고보조금 부정 수급 유형을 현재 10여 가지에서 20여 가지로 확대 점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혜미·이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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