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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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직장생활 6년. 아기가 막 돌이 되었을 때부터 떼어놓고 다녀서인지 웬만큼 해선 출근 때 매달리거나 떼쓰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이었다.
회사에서 묘한 일로, 나는 갑자기 사표를 내고 일찍 집에 돌아와 버렸다. 아이는 눈을 크게 떠서 나를 쳐다보며 멍청해 한다.
『너, 엄마 일찍 온 것 싫어?』
『아-아냐, 아냐!』하더니 이어서 묻는다.
『또 회사 나갈거야?』
『아니, 이젠 엄마 영영 회사 안나가.』
『정말?』
『정말이지.』
아이는 두어 번 거듭 묻고 나더니 그제야 환성을 지르며 껑충거린다.
『야-신난다. 엄마, 정말 남들은 다 엄마가 날마다 집에 있는데, 난 엄마가 없어서 울었단 말이야.』
가슴이 뭉클해 왔다. 그리고 회사에서의 억울했던 감정이나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막연한 불안 같은 것이 말끔히 사라진다.
『그렇지만 엄마 이제부터 회사 안 나가니까 돈이 없거든, 혜야는 엄마한테서 돈 못 타도 괜찮아?』
『돈이 하나두 없어?』
『그럼.』
조금 난처한 얼굴이더니 다음순간 아이는 밝은 얼굴이 된다.
『아빠한테서 타서 엄마 모두 줄께 』
아이는 아빠의 월급이 엄마보다 적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 때문에 가슴에 피어나는 모정을 꼭꼭 눌러버리고 한푼이라도 더 모아야 했던 것을….
저녁에 들어오신 아빠마저 내가 직장을 그만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오히려 소년 같은 얼굴이 되어,
『잘 집어 쳤어. 정말 당신이 집에 없으니 집안 꼴이 말이 아냐.』하면서 그동안 은근히 서글펐던 마음을 털어놓는다.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아 받아보는 단란한 밥상 앞에서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조금 적은 벌이라도 이젠 집에서 아이와 합께 남편의 시중을 들어주며 할 수 있는 부업을 가져야 겠다고-.
이은주(서울 성북구 상계1동1205의 50·이해용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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