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의 변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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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최근의 평양방문객 중에서 우리의 주목을 끄는 두 사람이 있다. 군사정전위 중립국 감독 위원단의 「스웨덴」수석대표 「홈스테드」소장과 「스위스」수석대표 「무이덴」소장. 이들은 사흘간격으로 3명의 보좌관을 대동하고 평양·북평의 여정에 올랐다.
이들은 『임기 중에 평양을 방문하는 것은 통례』라고 해명하고 있다. 전임자들도 평양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국의 상황에 따라서 그 평양방문의 「통례」는 번번이 정치적인 의미가 첨가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68년10월 하순, 역시 「스웨덴」수석대표 「핀마르크」중장이 비밀리에 휴전선을 넘어 평양을 갔었다. 68년은「푸에불로」호 사건의 해이다. 이 사건은 제삼국의 개입보다는 판문점의 막후교섭이 더 활발했었다. 그러나 「핀마르크」의 평양방문은 그 막후의 매듭을 풀어주는 조연자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자아냈다. 아뭏든 「푸에블로」호 선원은 그 두달 후에 석방되었다.
이번의 두 수석대표는「통례」와는 달리 보좌관을 대동하고 있다. 또한 이들의 여로는 북평까지 뻗쳐있다. 우선 보좌관을 대동한 것은 무슨 「사무적인 협의」를 시사하는 것 같다. 한 명도 아닌 3명씩이나 뒤따라갔다. 「중요한 사무」가 있음직도 하다. 북평 방문도 의미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중공 「붐」의 여파라기엔 너무 직선적인 해석이 되기 쉽다. 잠시 지난여름의 일을 회상하게 된다. 군사 정위「유엔」수석대표「로저즈」소장은 이임에 앞서 「중대발언」을 했었다. 판문점수석대표의 한국인 교체 설이 그것이다. 그는 또 군사 정위의 역할을 정치회담으로 발전시키는 문제까지도 언급했었다. 우연찮게도 중공대표가 다시 복귀한 것이 그 무렵이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들 일연의 사건들을 종합하면 정치적 의미의 확대해석이 가능할 것도 같다. 더구나 남북은 그 동안 적십자를 통해 대화의 길이 틔기 시작했다. 한반도 외부의 상황도 많이 바뀌었다. 중공의 「유엔」대표권승인은 그 중에도 가장 충격적인 변화이다.
그렇다면 언제나 입씨름으로 시종 하던 정전 위의 기능이나 역할도 어떤 영향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필경「홈스테드」와「무이덴」소장의 가방 속엔 무엇이 담겨있을 것도 같다. 「통례」치고는 너무나 많은 추측을 자아내게 하는 통례임엔 틀림없다.
그들의 평양방문은 무슨「변화의 시작」이 아닌가-쯤으로 생각된다. 적어도 이것이 판문점의 「메타모르프시스」(Metamorphosis=변용)의 한 표현인 것만을 가리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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