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 많을 "기일 내 예산 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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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해 예산을 회계연도개시 30일전까지 국회가 통과시켜야하는 것은 훈시규정이 아닌 강제규정이니 공화당의원들은 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공화당총재인 박정희 대통령은 공화당의원 전원을 청화대에 부른 자리에서 헌법50조2항에 규정된 『국회는 회계연도개시 30일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하여야 한다』는 예산 법정기일 준수를 제기했다.
박 대통령은 의원들에게 이 얘기를 하기 전날 밤 김종필 국무총리 백남억 당의장과도 예산법정기일인 12월2일이 강제규정이냐 훈시규정이냐를 놓고 토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통령의 물음에 대해 백 당의장은『일본헌법에서는「바이마르」헌법정신에 따라 이를 훈시구정으로 본다』고 일본의 경우를 설명했다는 것.
그러자 박 대통령은『왜 학자들은 한 법조문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을 내리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는데 김 총리는 법정기일이 강제규정이 아니냐는 의견을 말했다 한다.
어떻든 박 대통령은 소속 의원들에게『법정기일규정은 국회의원 30명 이상이 국무위원을 출석요구 할 때 출석해야 하는 것과 똑같은 강제규정』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과거에 지켜지지 않은 예를 드는 사람이 있으나 과거 잘못을 현시점에서 시정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 『명백한 헌법조항을 스스로 저버리는 국회가 정부에 헌법조항준수를 요구할 자격은 없는 것』이라고 했다는 것.
박 대통령은 예산을 놓고 당리당략을 운운해서는 안 된다고 못박기까지 했다한다.
박 대통령이「시정돼야 할 잘못된 전례」라고 지적했듯이 예산 법정기일은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6대 국회이후 64년에서 70년까지 법정기일이 제대로 지켜진 것은 64년과 68년 두 번뿐이다.
법정기일을 넘길 때마다 국회의장은 지키지 못한데 대한 형식적인 유감표명을 했었다.
회계연도개시 30일전까지 예산을 통과하도록 한 법정기일의 취지는 신년도 사업계획추진과 예산영달에 필요한 제반조치를 취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있다.
법정기일을 넘기면서도 6대 때는 이를 지켜야한다는 의식이 비교적 강해 대통령이 국회의장에게 유감을 표한 일도 있던 것이 7대에와 준법의식이 약해진 듯 하다.
제3공화국에 들어서 법정기일을 못 지킨 연도 중 65년 12윌4일, 66년에 12윌8일 예산을 통과시켰으나 7대 국회인 67년엔 12월28일, 69년 12월22일, 70년 12월19일로 더 늦어졌다. 이는 아마 7대 국회에서 국회운영의 파행이 심해졌다는 정치현실을 반영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다섯 번 중 65년에는 한일협정비준파동 이후 학원정상화와 지자제실시 문제로, 66년과 70년은 총선거를 앞두고 선거법협상 때문에, 67년과 69년은 6·8선거와 3선 개헌 후유증으로 야당의 등원이 늦어져 법정기일을 넘겼다.
여야는 28일 총무회담에서 국정감사시간을 절충하면서 예산의 법정기일을 지키도록 노력키로 양해했다. 그러나 예산국회 두 달을 잇단 사건 때문에 보내고 뒤늦게 국정감사가 시작됐다. 이 때문에 감사가 끝나는 11월18일부터 12월2일까지는 불과 14일 밖에 남지 않은데서 법정기일준수의 어려움이 있다.
공화당은 박 대통령의 간곡한 당부가 있은 만큼 어떻게 해서라도 예산 법정기일을 지켜야 할 입장이다. 29일 의원총회에서도 백 당의장과 현오봉 원내총무가 이를 되풀이 강조했으며 간부의원들은 책임감에 머리가 무겁다고들 한다.
총무단 에서는 본예산 심의기간 14일을 상위예심에 6, 7일, 예결위 종합심사에 5, 6일, 본회의 심의에 2, 3일로 잡아놓고 있다.
이를 위해 당 간부들은 여야중진간의 협의접촉을 통해 공화당의 입장을 야당 측에 이해시키고 국정감사 기간 중 상임위별로도 야당의원들을 설득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신민당은 법정기일을 가급적 지킨다는 양해는 했지만 꼭 지켜야겠다는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사실 6천5백억 원 규모의 예산안과 부수세법안을 14일 동안에 처리한다는 건 상임위나 예결위가 밤을 밝히며 심의한다해도 충분한 심의엔 부족하다. 야당에선 예산심의 날짜가 부족한데도 국회를 보름동안이나 공전시킨 것은 공화당이 아니냐는 것.
신민당의 한건수 부총무는 총무회담에서 예산심의 기간을 20일은 가져야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면서『법정기일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기는 하나 지켜진 일이 별로 없었다』는 전례를 들기도 했다.
특히 신민당은 예산안과 병행심의하기로 여야가 합의한 지방자치법안·인신보호법안등 정치적인 법안의 통과를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으로서는 이들 법안을 금년 정기국회에서 들어줄 수는 없을 것이다.
또 예산을 정치적「바터」의 최대무기로 생각해온 야당이『예산에 당리당략을 운운해선 안 된다』는 논리를 납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법정기일을 꼭 지켜야겠다는 공화당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는 너무나도 넘어야 할 고비가 많은 것 같다. <성병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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