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 각성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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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사정 모르는 이들은 얼마나 팔자가 좋길래 40 넘어 단 둘이 공부하러 다니느냐고 그러지만, 자식을 버리고 온 당사자들은 하루하루가 근심·걱정의 연속이다.
어두운 방에서 책 읽다가 눈이나 버리지는 않았을까, 길은 제대로들 건넜을까, 온갖 조바심 때문에 꽃을 보아도 고운 줄 모르고, 우거진 숲 사이를 걸어도 심란하기만 한데, 졸립기는 왜 이다지도 졸린지? 식후 한시간 가량 지나면 꼭 졸음이 온다.
도서관 문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 보고 찬물로 눈도 씻어 보아도 자리에 앉기만 하면, 또 졸립다. 책을 앞에 펼쳐놓고, 하나가 꾸벅거리면 또 하나가 꾸벅거려 가위 가관인데 정신이 바싹 들 묘약이 좀처럼 없다. 그러다가 문득 자식 생각을 하면 졸음은 삽시간에 달아나고 만다.
『애들 생각을 해요! 애들 생각을!』
날마다 이 구호를 외치고 졸음을 쫓고 있는데 너무 정신이 들다보면 두 눈에 핏발이 서고 때로는 울화까지 치밀어 올라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같은 교직자로서 남만 탓할 수는 없으나 국민학교 3학년 어린이의 따귀를 갈기는 주먹은 용서할 수가 없다. 그 선생에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부모 떨어져 외로이 지내는 9세짜리의 따귀를 갈기며 폭언을 퍼부어서 그 어린이의 가슴에 일생동안 씻기지 않을 상처를 입힌 것을 본인은 모르고 있을게다.
사연인즉 이렇다. 우리 내외는 자식들을 아우에게 맡기고 공부하러 밖으로 나왔다. 애들의 숙부는 책임상 형의 애들을 엄하게 다스렸다. 학교 선생님께서는 무슨 악기를 사오란다. 애들은 돈 타기가 어려워서 작은 아빠께는 말씀도 못 드렸다. 그래서 마음 약한 애는 슬슬 선생님 눈치만 살피게 되었다. 그 결과 선생님은 화가 나셔서 애들을 때리셨다. 그 중의 한 애가 코피를 쏟고 울고 집에 돌아왔다. 부모와 떨어져 있는 4남매는 부은 코를 보며 밤새껏 모두 통곡을 했다.
공부가 무어라고 이 소식을 돋고서 안한히 밖에 나가 있을 수 있을 것인가? 날마다 이 생각만 하면 잠이 깨고 치가 떨렸다.
남을 탓하기 전에 나 스스로 뉘우쳐 보기도 했다. 지난 10여년간의 교단 생활에서 나도 남의 가슴에 못을 박은 일은 없었던가? 나도 20대 후반기에 폭력 교사로서 주먹을 휘두른 때가 있었다. 비록 모교의 전통을 잇고 후배들을 올바르게 이끌겠다는 구호 아래였지만. 또 중 l·중 2학생은 달래고 중 3·고 1학생에게는 따끔한 매를, 고 2·고 3학년생과는 「대화로」라는 원칙을 세우기는 했었지만, 그 시절에 내 주먹을 보고 한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지금도 생생하다.
『선생은 제 자식을 키워봐야 남의 자식이 귀여운 줄도 안다.』
이제 우리 내외는 그 선생님께 무한한 감사를 올린다. 그 선생님의 주먹이 없었던들 우리 내외는 날마다 졸기만 했을 것이다. 자식 버리고 간 죄를 날마다 뉘우치게 해 주시고, 온갖 것 뿌리치고 하루 속히 서둘러 귀국케 하여 주신 은혜를 잊을 길이 없다. <강신항 (성균관대 교수·국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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