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문학은 구별해야|노벨 문학상 수상 네루다 본사 특파원과 단독 회견|파리=장덕상 특파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21일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파리 주재 칠레 대사 「파블로·네루다」는 키가 크고 뚱뚱한 서민형이었다. 눈동자는 한줄기 암영에 가려져 있으나 빛났다. 간소한 옷차림의 「네루다」는 조용한 말씨에 과묵한 편. 그러나 유머가 풍부했다. 다음은 22일 파리 주재 칠레 대사관에서 가진 본 기자와의 일문일답.
-수상 소식을 들은 후 첫 소감은?
처음엔 믿지 않았다. 매년 이맘때면 내 이름이 수상 후보자 명단에 오르내려 이번에도 얼른 믿으려 하지 않은 것이다. 라디오 방송을 여러 차례 계속 들은 후 사실인줄 알았다.
-상금을 어디에 쓸 것인가?
아직 생각 못해봤다.
-노벨상을 받음으로써 전보다 시인으로서의 인기가 크게 상승되리라 기대하는가?
인기와는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을 받은게 아니고 내 시가 상을 받았기 때문에-.
-「아옌데」 대통령이 전화로 축하를 했다는데?
그는 나의 오랜 친구다. 오는 11월3일 그의 집권 1주년 기념식에 나를 불러 크게 축하하겠다고 했다. 그는 몹시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영향을 받은 시인이 있는가?
「가르시아·로카」와 「프리드먼」이다. 「로카」의 영향으로 「셰익스피어」를 번역하게 되었다.
그는 「라틴·아메리카」의 위대한 작가다. 「프리드먼」을 통해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나는 그의 작품에서뿐만 아니라 그의 인격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작가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은 어떠한가?
문학 작품 및 작가에 대한 프랑스의 영향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위대한 작가 치고 프랑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파리는 어떠한 곳인가?
모든 벌레를 부르는 밝은 빛과 비교할 수 있다. 작가에게 파리는 고기에 물과 같은 존재다.
-왜 사회주의자인 당신에게 상이 수여되었다고 생각하는가?
「스웨덴·아카데미」는 중립적이다. 그들의 결정은 그들 자신에게 달려있기 때문에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
-좌익에 가담한 동기는….
남미의 「인디언」을 비롯한 억압된 민족을 해방시키는 길은 그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학생시절엔 사회 부정에 대한 사회주의 운동이 한창 「라틴·아메리카」를 휩쓸 때다.
-수상과 칠레의 현 정권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생각하는가?
정치와 문학 세계는 엄격히 구별된다. 시를 보고 상을 준 것이지, 정치 체제를 보고 주는게 아니다. 그러나 수상은 전 칠레의 영광임에 틀림없다.
-「스페인」말을 모르고도 당신 작품을 이해할 수 있는가?
어렵다. 시는 그나마 말의 특수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모든 번역 작품은 완전하지 못하다. 한 작가의 세계와 그 나라 말을 모르고 어느 작가의 작품을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세계 문단에 대한 라틴 문학의 영향은?
라틴 문학은 유럽 문단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최근 젊은 세대가 유럽으로 많이 건너와 활약함으로써 조금씩 알려지고 있다.
-왜 외교관을 지망했는가?
1927년 초라한 「랭군」영사로부터 시작해서 15년간 외교관 생활을 마치고 외교계를 떠났다. 그런데 제국주의와 싸우는 역사적 혁명기에 「아옌데」의 권유로 다시 나왔다.
-문학과 외교는 병행되는가?
대사직과 시인을 겸하기란 지극히 어렵다. 시보다 행정 업무에 더 바쁘다.
-시는 계속 쓸 것인가?
물론이다. 시는 나의 생명이다.
-파리의 거리에는 자주 외출하는가?
「센」강변을 산책하고 싶은 데도 자주 못한다.
-생애에서 무엇을 기다리는가?
모든 것을 기다린다. 나는 낙관주의자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죽음이 두려운가?
나는 형이상학주의자가 아니다. 오히려 유물론자다. 나는 죽음이 어떤 것인지 모르며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
-사랑에 대한 개념은?
사랑은 죽음과는 정반대다. 사랑은 현실로 존재하며 증명된다. 사랑은 매일 실천하며 살아야한다.
-시 이외에 당신을 즐겁게 하는 것은?
사랑·자연 등 모든 것들-.
-칠레의 현 체제는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지 않다. 칠레는 제국주의 전통과 봉건적 유산을 많이 물려받은 나라다. 지금 막 이두가지의 악과 투쟁을 시작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