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와 독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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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우리는 다같이 한 핏줄입니다』, 『이와 같이 기쁜 날에』, 이런 식으로 남북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절차가 진행되었다. 또 남북을 연결하는 전화선이 가설되자 마치 휴전선의 일부가 철폐되기라도 한 듯이 많은 국민들이 훈훈한 마음으로 이것을 주시하였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슨 요사스러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독침을 가진 간첩의 무리가 바로 이때에 수도 서울거리를 방황하고 있다. 분명히 이것은 이해하기 곤란한 사태이다. 그 독침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가. 미소 속에 감추고있는 독침의 의미를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007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줄 알았던 독침을 사용하는 간첩 「드릴」이 있어 그럴듯하게 생각된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등골이 오싹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화학적 처방에 의하면 『독을 없애는데는 독을 사용』해야 되는 것으로 되어있다. 그러니까 독에는 독을 가첨하지 않으면 중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독침에는 독침을 가지고 대항해야 될 것인가. 그것도 또 난처한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지금 적십자회담을 진행시키겠다고 하는 이 마당에 말이다.
4반세기동안 한 민족이 격리된 생활을 해왔다는 사실은 민족의 「아이덴티티」자체를 지극히 애매하게 만드는데까지 이르렀다는 것을 주의해야 될 것 같다. 슬픈 일이다. 우리들의 사고방식·행동양식에는 너무나 큰 거리가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려고 한다. 그러나 저들에게 있어서는 「인간」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것이 아니고 어떠한 목적을 위한 소모품에 불과한 모양이다.
『사람은 그 자체가 목적이다. 따라서 수단으로 사용될 수 없다.』 이런 의미의 말이 생각난다. 「칸트」인가 누구의 말일 것이다. 민족이니, 국가니 하지만 결국 인간애가 기본이 아닌가 생각된다. 적십자 운동이라는 것도 바로 그런 것이며, 이산가족 찾기 운동이라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닌가. 우리는 미소를 사랑한다. 그러나 독침을 숨긴 미소를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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