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자의 아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세상에 이런 불명예스런 이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실업자의 아내처럼 못나 보이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이와 결혼한지 어언 3년이 되었다. 부픈 꿈과 희망을 안고 결혼을 한 땐 오늘날과 같은 생활을 전혀 예상하지도 않은 것은 아니다. 살다보면 여러 가지 어렵고 괴로운 일이 가로놓일 때가 있으리라고 각오는 했다. 그이가 공무원을 의원사직하고 조그마한 자본으로 사업에 손을 대었다가 경험부족으로 실패했던 그때부터 우리 신혼의 꿈들은 깨어지고 말았다.
근1년 가까이 노는 그이는 초췌한 모습으로 백방으로 뛰어다녀도 자기에게 맞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다시 공무원 시험준비에 바쁘다.
아직 30대이니까 늦지 않다고 책과 씨름하는 모습을 볼 때 약한 나의 마음을 굳세게 해주고 있다. 친정 집에서 약간의 생활비를 보내 겨우 끼니를 잇고 있지만 필요한 책 하나를 제대로 사주지 못해 가슴이 아프다. 이웃이나 일가친척을 만나면 어떻게 사느냐고 태산 같은 걱정을 들을 때 나는 개미집에라도 숨고 싶은 부끄러움뿐이다. 그러나 좁은 방구석 책상에 앉아 있는 그이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다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꼭 믿는다.<한금례·부산시 문현동 650의11 차용대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