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전략 착수 시점 안갯속 … 시장 불확실성 더 커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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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버냉키(左), 옐런(右)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출구전략’ 착수 시점이 다시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Fed 통화정책 결정기구인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이틀간 회의를 마치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양적완화 정책을 축소하지 않기로 했다. 시중에서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매달 850억 달러씩 돈을 풀고 있는 걸 줄이지 않기로 한 것이다. 기준금리를 0~0.25%로 유지하는 초저금리 기조도 그대로 유지했다.

 Fed의 결정은 시장이 예상한 대로다. 최근 잇따라 발표된 경기지표가 기대에 못 미쳐 섣불리 양적완화 정책 축소에 나서기 어려웠다. 더욱이 지난달 16일 동안의 연방정부 폐쇄 사태와 국가부도 위기가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었다. Fed는 이날 성명에서 “경제는 완만한 속도(moderate)로 회복되고 있다”면서도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증거를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고 밝혔다.

 월가의 대체적인 시각은 Fed가 적어도 내년 3월 전엔 채권 매입 규모를 줄이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는 쪽이다. 무엇보다 미 정치권의 정쟁으로 인한 재정 파탄 위기가 언제 재연될지 모른다.

셧다운은 1월 15일, 정부 부채한도 증액은 2월 7일까지 시한을 미뤄놓은 휴전 상태이기 때문이다. 연말로 갈수록 정치권 대립은 격화할 공산이 크다.

 정책 결정의 나침반이 돼야 할 경기지표에도 셧다운 사태 바이어스가 끼어 있다. 셧다운 여파가 완전히 제거되는 12월 지표는 내년 1월 초나 돼야 나온다. 그때까지는 경기지표를 100% 신뢰하기 어렵다. Fed 내부적으로도 벤 버냉키 의장의 레임덕은 가속화하는 반면 후임자인 재닛 옐런 부의장의 입김은 거세진다. 옐런은 양적완화 축소에 소극적인 대표적인 ‘비둘기파’다.

 그러나 이날 Fed 성명엔 묘한 뉘앙스가 풍겼다. 셧다운과 국가부도 위기로 인한 경제 충격을 별로 강조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시장에선 Fed가 12월 17~18일 열리는 올해 마지막 FOMC 회의에서 작은 규모라도 양적완화 축소에 전격 착수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퍼졌다. 지난 9월 회의 때 시장 예상을 깨고 기존 정책 유지를 결정했듯이 이번에도 시장의 허를 찌르지 않겠느냐는 예상이다.

 이날 Fed가 출구전략 착수를 연기한 뒤 뉴욕증시 하락 폭이 더 커진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웰스파고 자산운용 선임 포트폴리오 전략가 브라이언 제이컵슨은 “10월 성명에서 금융시장에 대한 Fed의 우려가 보이지 않은 건 이례적”이라며 “12월 양적완화 축소에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내년 1월 말 물러나는 벤 버냉키 의장도 떠나기 전 출구전략 시작의 버튼을 누르고 싶어 할 가능성이 있다. 자신이 만들어 놓은 양적완화라는 비정상적 조치를 정상화의 수순으로 돌려놓고 떠나는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할 것이란 관측이다.

 기껏 양적완화 축소에 적응해온 월가는 Fed의 태도 변화로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지자 울상이다. 연말까지 경기지표가 나올 때마다 Fed와 밀고 당기는 치열한 ‘수 싸움’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몇 달 안에 어차피 맞을 매라면 빨리 맞는 게 속 시원하지 않겠느냐는 심산인 것이다. 이런 정서를 반영해 지난달 30일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61.59포인트(0.4%) 떨어진 1만5618.76으로 거래를 마쳤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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