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의 오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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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현대역사를 움직인 세계적 지도자라면「처칠」다음으로는「루스벨트」를 손꼽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의 실책도 적지는 않았다.『전후의 세계는 소련보다도 영국세력의 증대를 더 두려워 해야할 것이다…. 인간의 자유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소련이 아니라 영국인 것이다.』
이와 같이 엄청나게 그릇된 판단에서 이루어진 전후처리방안이 자유진영에 여간 불리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오늘의 문제는 모든 게 현기증을 일으킬 만큼 벅차고 복잡하다. 보통 사람은 그저 압도당할 뿐이다. 어느 한 문제나 모두 수 없는 다른 문제들과 서로 꼬리를 물고 있다. 또 그 결과가 몇 십 년 후에나 나타나는 것들이 많다.
그러나 지도자들에게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어떻게든 해답을 내려야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그들은 문제를 가능한데까지 단순화시켜서 생각해야한다. 이런 단순화의 능력이 영도력을 결정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여기에 끔찍한 과오의 씨가 있는 것이다.
1940년 4월 독일의 서부전선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러나 미군은「베를린」을 눈앞에 두고서 별안간 진격을 멈췄던 것이다. 소련군에「베를린」점령의 영광을 안겨주기 위해서였다.
이 결정은「트루먼」대통령의 승인아래 당시의 연합군최고사령관「아이젠하워」가 내렸다.「처칠」을 비롯한 영국 측에서 이에 강력히 반대했던 것은 물론이었다.
지금까지 이것은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던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작년에 공개된 전시문서들을 보면「베를린」점령문제에 관한 결정은 순전히 전략적 중요성을 상실했다는 단순한 군사적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이 결과로「베를린」은 분할 점령되고 냉전은 격화하였다.「아이젠하워」의 군사적 판단은 옳았다. 그러나 문제 자체의 판단은 엄청나게 틀렸던 것이다.
「아이젠하워」는「처칠」이나,「루스벨트」만한 그릇은 못된다. 따라서 잘못이 있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뭇 개인의 실책이나 우 행의 단죄에는 냉혹한 사람들도 지도자들의 과오에는 퍽 관용적인 것도 이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리네에게는 그만한 정치가도 드물다.「닉슨」의 중공방문발표가 있은 다음날부터 우리 나라는 조 야가 꼭 백화쟁명의 꼴이다. 자세도 어지러울 만큼 바뀌어져가며 있다.
세계의 물결을 따르기 위해서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물결을 헤어나려 허우적거리는 모습같이 만 보인다. 자주외교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지금이 가장 냉정이 아쉬운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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