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대의 산산산] 면바지 차림 산행 비에 젖으면 위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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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등산복은 기능이 우수할 뿐 아니라 색상과 디자인도 세련돼 누가 입어도 맵시가 난다. 그러나 아직도 청바지나 면바지를 입고 다니는 등산객을 종종 볼 수 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긴 양말 속에 청바지 자락을 집어 넣고 다닌다. 이러면 혈액순환이 안되고 관절이 압박을 받아 걸음걸이가 불편하지 않을 수 없다.

면바지를 입고 산행을 하다 비에 젖으면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동상도 위험하지만 저체온증으로 목숨마저 위태로울 수 있다.

그동안 얇은 면바지를 입고 등산에 나섰다가 목숨을 잃은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지난 2월 초 경기도 포천의 국망봉(1천1백68m)에서 일가족 여섯명이 산행에 나섰다가 그중 네명이 목숨을 잃었다. 1993년 2월엔 설악산 오색에서 대청봉 일출을 보러 가던 세명의 등산객이 눈길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탈진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었다. 모두가 면바지에 허름한 점퍼를 입은 평상복 차림이었다.

면은 잘 젖는 데다, 젖으면 늦게 마르고 보온도 잘 안된다는 취약점이 있다. 미국의 저명한 등산가이며 의사이기도 한 시어도어 라스로프 박사는 '땀에 젖은 옷의 열전도율은 움직이지 않는 공기보다 약 2백40배나 크다'고 밝혔다.

옷이 젖었을 때는 피부에 밀착돼 있는 따뜻한 공기의 격리층이 없어진다. 그만큼 몸의 열을 빨리 빼앗는다는 뜻이다. 산에서 방풍.방수.투습 기능의 옷을 입는 것은 몸과 옷 사이에 있는 따뜻한 공기를 찬 바람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서다.

최근의 등산복은 폴리에스터.폴리프로필렌.고어텍스.폴리스.윈드 스토퍼.스트레치 폴라텍 등 방수.보온.투습 기능을 지닌 합성소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때는 울이 등산의류의 왕좌로 군림한 적이 있다. 탄력성이 좋고 공기를 많이 머금어 보온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겁고 부피가 크며 흘린 땀이 쉬 마르지 않는 약점이 있다.

땀이 빨리 마르는 건성 섬유가 인기를 얻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기다 항균성이라 오래 입어도 악취가 없다.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의 사람들에게 적합한 소재다.

시대는 변하고 등산 방식도 바뀌고 있다.신소재도 해마다 나오고 있다. 기온이 낮은 거친 환경에서는 의류의 기능이 생사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변화무쌍한 산악환경과 각자 체질에 알맞게 옷을 골라 입는 지혜가 필요하다. 산에는 준비없는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복병이 도처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돌이켜 볼 때다.

51년 인류 최초로 8천m급 고산(안나푸르나)을 올랐던 프랑스 산악인 모리스 에르조그의 경우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그는 하산하면서 장갑을 챙기지 못한 사소한 실수로 동상에 걸려 열 손가락을 모두 잘라야 했다.

<코오롱 등산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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