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북의 혈육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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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아내에게 <목사 윤두환씨의 부인>
20년만에 불러보는 여보! 50년12월20일 새벽 감시의 눈초리를 피해 집 뒷문을 빠져 나오면서 내가 던진 말 『여보, 내 곧 다시 오리다』- 그 말이 마지막말이 될 줄이야 뉘 알았겠소. 멀리멀리 따라나오며 말 한마디 못하고 눈물만 연신 닦아내던 당신의 얼굴이 지금도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소.
그때 3살 박이 막내동이 석칠이 녀석이 칭얼거리면서 문을 나서는 내 옷자락을 붙든 일이 너무도 생생하오 석칠이가 살았다면 24세의 청년이 되어 지금쯤 늠름해 있을거요.
몇 년 전에 귀순한 해군대위 이필은씨로부터 월남가족이나 기독교인 가족은 모두 만주로 추방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와함께 월남했던 선옥이 석준이는 날마다 당신이 석칠이를 데리고 만주 땅에서 고초를 겪고 있겠다구 시름에 잠기곤 했다오.
선옥이는 보육대학을 다니다 대구제일교회장로와 결혼하여 3형제를 두었고 석준이는 숭실대학을 나와 대한모방의 창고계장으로 일하면서 슬하에 2남1녀를 두고 단란히 살고 있소.
남북을 사이에 두고 당신은 아들을, 나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갈려있다니 어쩌면 운명의 장난이 이다지도 모질까. 이것도 하느님의 뜻이라면 달게 재회의 날을 손꼽아 기다립시다. 나는 대한장로교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었소. 그때부터 지금까지18년 동안 서울용산 신용산교회를 맡아 하느님의 종노릇에 보람을 느끼며 9백명의 신도들과 고락을 나누고 있다오.
나는 당신과 헤어진 후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에 나가 당신과 다시 만나 옛과 같은 평화로운 가정을 가질 날이 오기를 하느님께 빌고있지요. 대부분의 월남동포들은 이곳에 내려와 열이면 열 새장가를 들어 새 생활을 시작했으나 나는 지금 21년째 홀아비생활을 지키고 있다오.
여보! 홀아비가 식모를 두고 살면서 당신이 내게 얼마나 필요하고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지금껏 뼈저리게 느끼니 이것이 사랑인지도 모르겠소. 10년전 한때는 결혼할까 했었으나 어느 날 꿈에 당신이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 나를 끌어당기는 것이 아니겠소. 용서를 바라오.
다시는 그런 망상을 안할테니 말이요. 당신도 이젠 환갑이 다된 할머니가 되었겠구료. 여보, 만날 날까지 굳세게 살아주오. 당신 사진을 몽땅 놓고 온 것이 한인데 바람결에라도 사진 한장 보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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