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한국문제의 한국화-김홍철<서울대문리대> 이호재<고대정경대> 이영호 교수<미조지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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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군사정전위의 「유엔」군측 수석대표를 한국인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로저즈」소장의 제안은 통일에 이르는 단계로서 제기된 방법 가운데 정치적 함축성이 가장 깊은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열강의 개입과 대치 속에서 처리되어온 한국문제를 한국화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단절된 남북의 대화를 실현할 수 있는 최초의 통로가 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한국문제의 한국화-. 이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발전이 열강에 의한 무력개입이 강화되어온 전후체제 속에서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주변강대국관계가 견제·중화되고 열강이 세계문제에 대한 직접 개입정책을 완화·감소해 가는 국제정치의 상황이 한국문제를 한국화단계로 접근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국화는 바로 남북간의 직접대화 내지 대화로 연결된다.
분단 25년간의 시간 속에서 단 한번도 대화의 기회를 갖지 못한 철저한 단절 속에서 이질화를 재촉해온 남북관계가 더할 수 없는 비극이었다면, 평화를 향하는 국제경세의 흐름 속에서 내밀어진 이 제안은 남북을 대면시킬 수 있는 최초의 단서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끼리 직접 대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제안된 수석대표 교체안은 이러한 국제정치의 발전사적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불가피성을 근거로 장기적 안목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닉슨」 중공방문결정으로 확고해진 미·중공접근은 「아시아」 지역에 대한 양국의 무력개입을 정치적 개입으로 대체함으로써 현상동결의 노선을 택할 것이 명백하다.
무력보다는 정치에 의해 지배되는 「현상유지」 속에서 결국 한국문제는 한국인끼리 해결해야 할 수밖에 없는 단계가 올 것에 대비하여 남북간의 직접교섭의 통로가 사전에 마련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중공의 「유엔」가입이 확정되어 가고 있는 정세의 변화는 언젠가 「유엔」군의 철수 내지 유명무실화를 초래할지도 모르게 될텐데, 이럴 경우를 예상하여 「유엔」군사에서 담당하고 있는 한국휴전관리를 미리 한국 측에 이관하는 조치를 취해놓지 않으면 판문점 통로마저 닫혀버리게 될 것이다.
현실적으로도 주한미군의 감축이후 휴전선 전면방위를 한국군이 담당하고 있는 만큼 한국이 휴전 관리의 당사자로 전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정부에서도 최근 김종필 국무총리가 국회답변에서 밝힌바와 같이 『수석대표 교체 제의가 오면 수락하겠다』고 방침을 정한 것은 합리적이며 국제정세의 흐름에 맞춘 결정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포함해서 한국통일 내지 분단개선의 방안으로 제기되는 「이니셔티브」에 대처하는 정부의 태도에는 문젯점이 많다.
우선 비무장지대평화이용이나 수석대표 교체 등의 미측 제안에 대한 사전대비가 없었던 것 같다. 따라서 이들 제의를 미측과 미리 협의한다거나 충분한 대책을 강구해 놓았을 것 같지 않다.
정부의 반응에 혼선이 있었던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통일에의 단서로서 제기된 이러한 방법들은 한국의 「이니셔티브」로 나왔어야 마땅했을 것이고 보면, 앞으로의 단계적 방안의 연구나 가능한 모든 경우에 대비하는 대책수립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임할 것이 요청된다.
한국문제의 한국화는 주변강대국들이 피차에 개입도를 감소시키는 것이 그들에게 유리하다는 국제적 상황 속에서 시작되어 촉진될 것이기 때문에 배후에서 제동을 가하는 형식을 취하게 될 미·소·일·중공 4국간의 철저한 세력균형이 기본적 조건이 된다.
국제정치의 관행은 강대국간의 세력균형이 깨어질 때 그들에 의한 최대한 개입이 촉발되는 사태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한국화의 경우엔 최소한 개입의 줄이 남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한국의 입장으로서는 이것마저 배제토록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조그만 개입의 편중이 곧 대규모개입을 유발하여 원점으로 되돌려 놓을 위험이 남게된다.
남과 북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방향의 정책을 추구하는 것이 이러한 최소한 개입마저 해소하는 최선의 방책이지만 현실적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한국은 주변열강의 세력균형의 보강 속에서 능동적인 전개를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예컨대 한국에 불리한 영향력을 행사할 소·중공에 대해 말만 주고받을 정도의 제한된 외교, 한정된 교역이라 할지라도 그들과의 접촉관계를 구축함으로써 엷은 안전만을 형성하는 방안이 전향적 자세에서 검토되어야 할 것 같다.
결국 외교의 폭을 넓히고 북괴를 제외한 공산국과도 여러가지 형태의 관계구성을 시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어느 시기에 가서 한국화의 분위기 속에서 한국인 수석대표가 북괴대표와 대화를 갖게 될 경우 북괴가 어떠한 자세로 임하게 될 것이냐는 점도 사전에 충분히 고려되어야 할 문제다.
「로저즈」소장이 『북괴는 비밀협상에서 성실하다』고 한 말은 이와 관련하여 매우 시사하는바가 크다.
북괴가 공식석상의 선전과 협상에서의 방법론을 구분하고 있다는 것인지 「로저즈」의 말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평화통일의 길목에서 대화의 상대가 될 북괴의 자세는 심각한 검토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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