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캉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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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여름이 되면 「바캉스」라는 유행병이 휩쓴다. 너도나도 「바캉스」다. 「바캉스」를 못 가게되면 마치 사람구실을 못하는 것 같은 태도다. 일본인들이 불어의 이 말을 애용하기 시작했다. 우리 나라의 신문이 그것을 모방해서 퍼뜨렸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말은 우리의 의식이나 생활에 전혀 오르내리지 않았다.
「바캉스」는 원래 「라틴」말에서 유래한다. 「빈(공)다」는 뜻이다. 여름에 집을 비우고 여행이나 피서를 떠나는 것이다. 여기서 휴가라는 의미가 생겼다.
우리의 생활에는 하나의 「리듬」이 필요하다. 근로와 휴식의 「리듬」이다. 일하고는 쉬고, 쉬고는 일하고, 노와 휴의 되풀이 속에 생활의 건전한 「리듬」이 있다. 일만 하면서는 살수가 없다. 놀기만 해도 인생은 고역이다. 일하면서 쉬고 쉬면서 일해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건강한 「리듬」이다. 휴식은 내일의 활동을 위한 생활의 건전한 활력소가 되어야한다. 여기에 「바캉스」의 긍정적인 인생적 의미가 있다.
우리 나라의 「바캉스」는 하나의 사회적 유행병이 되었다. 「바캉스」에도 하나의 철학이 있고, 지혜가 있고, 주체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째는 제 개성과 분수에 맞는 「바캉스」를 가져야 한다. 남이 다 하니 나도 한다. 남이 해운대에 가니 나도 해운대에 간다, 남이 「호텔」에 드나드니 「호텔」에 든다는 식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저마다 제 분에 맞고 제 개성에 맞는 「바캉스」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분에 넘치는 허영, 낭비, 사치, 모방을 삼가야 한다. 소비는 좋지만 낭비는 하나의 악이다.
속은 텅 비어 있으면서 겉만 화려하게 꾸미려는 외화내허의 허영심의 노예가 되지 않아야 한다.
빛나는 것이라고 다 금은 아니다. 겉으론 부하고 안으로 가난한 외부내빈보다는 겉으로 가난해 보이지만 속으로 부한 외빈내부의 알찬 자주인의 정신과 자세를 잊어서는 안된다.
둘째는 소비적 「바캉스」가 되지 말고 생산적 「바캉스」를 가져야 한다. 제 분수와 제 개성에 맞지 않는 「바캉스」를 가지다보면, 공연히 심신이 피로하기만 하다.
「바캉스」에서 돌아와서 몸과 마음이 지치고 허탈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 분명히 어딘가 잘못되어있는 것이다.
내일의 씩씩한 생활의 활력소를 제공할 때에 「바캉스」가 인생에서 적극적 의미를 갖는다.
속된 말로 녹초가 되어서 돌아오는 「바캉스」라면 차라리 아니 가는 것만 못하다.
우리는 생의 환희를 주고 전진의 용기를 북돋워주는 「바캉스」를 가져야한다.
「바캉스」의 어원은 「빈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잠시 집안을 비우거나 직장을 비우는 것은 좋다. 그러나 마음이 비고 생활이 비어서는 안된다.
「바캉스」는 생의 충실을 위한 것이지, 생의 공허를 위한 것이 아니다. 저마다 제 개성과 분수에 맞는 생산적 「바캉스」를 가지자. [안병욱<숭전대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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