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 호법의 기백|김연수 <변호사·전대법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이번 사법 파동은 지난해 대구고법에서 일어난 정풍 운동과 일맥상통한 점이 있는 것으로 본다. 정풍 운동은 자율적으로 일어난 것이고 이번 파동은 두 법관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이란 의부의 자극에 의해 일어난 점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불만은 다 같다고 본다. 즉 사법관의 불만은 사법권에 대한 침해가 있다는데 있는 것인데 이번 법관들은 그 침해자들로부터 앞으로 두 번 침해를 받지 않겠다는 것을 보장받기를 희망하는 것 일게다. 사법권의 독립이란 원래 헌법상 보장돼있고 그 수호는 법관 스스로가 해이할 일이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러한 당연한 논리를 가지고 그네들을 설득시키려 하려면 혹은 일시적인 무마는 될지 모르겠으나 사법권을 침해하는 자들로부터 앞으로 두 번 침해하지 않겠다는 보장을 받지 않는 한 그 설득무마는 미봉책에 불과한 것으로서 앞으로 두 번 다시 파동이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침해자들로부터 다짐을 받지 아니한다 하더라도 사법부 자체로서 그 독립을 수호하지 못할 이유는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아무리 침해가 있다하더라도 법관이 의연한 태도로 호법을 위하여 가치 있는 희생이 되겠다는 기백만 있으면 그로써 사법의 독립이 능히 수호되리라 믿어진다.
그러나 법관 개개인에게 저마다 그러한 기백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인 만큼 그러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수뇌부가 그러한 기백을 법관들에게 넣어주려면 구두 설득보다는 수뇌부 스스로가 실천에 옮겨서 부하판사들에게 시범해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다. 수뇌부로 부터 일선 법관에 이르기까지 「호법의 신」이 되겠다는 기백을 가지고 나가면 사법부자체로서 그 독립을 수호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 일본 명치시대에 행정부의 압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을 끝까지 목숨을 걸고 수호한 당시 대심 원장 「고다마」 (아옥) 씨와 같은 기백이 새삼 아쉬워짐을 느끼는 바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