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열기 … 매 경기 1500명은 암표 산다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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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삼성과 두산의 4차전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이 관중들로 꽉 차 있다. 암표판매도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적발 시 내는 범칙금 액수가 적고 인터넷 암표거래의 경우 처벌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현동 기자]

#28일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와 두산베어스의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가 열린 잠실야구장. 매표소 앞에선 표를 구하지 못한 남성 2명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들 주위로 검은 점퍼를 입은 남자 한 명이 다가왔다. 남성은 조용한 목소리로 “3루 블루석 1장 15만원”이라고 말했다. 암표상이었다. 정가(1장당 5만원)의 3배 가격이었다. 하지만 몇 분 뒤 이들은 현금 30만원에 입장권 2장을 주고받은 뒤 헤어졌다.

 #프로야구 두산의 열혈팬인 대학생 김은경(24·여)씨는 지난 22일 오후 친구들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았다. 27일과 28일 잠실에서 열리는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3·4차전 경기를 인터넷으로 예매하기 위해서였다. 친구들과 함께 스마트폰·PC 등 총 4대의 기기로 작업을 했다. 하지만 예매 시작 시간인 오후 2시 홈페이지엔 ‘접속인원이 많아 잠시 후 재접속하라’는 안내문만 나왔다. 10분 만에 표는 매진됐다. 예매 시작 1시간도 되지 않아 한 야구티켓 양도 카페엔 3·4차전 표를 판다는 글이 올라왔다. 결국 김씨는 이곳에서 정가의 2배(장당 7만원)로 옐로석 2장을 14만원에 샀다. 김씨는 “상식적으로 예매한 지 1시간 만에 표를 양도한다는 글을 올리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이들은 대부분 암표상이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열기가 고조되면서 암표 판매 역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국시리즈 3·4차전 경기가 열린 27, 28일엔 지하철 잠실종합운동장역 6번 출구 앞을 중심으로 20여 명의 암표상들이 돌아다녔다. 현장에선 단속을 나온 경찰과 서울시 공무원들이 있었지만 실제 단속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경찰 심문을 받은 암표상들은 대부분 “남는 표를 같은 가격에 넘기려 했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실제 매매현장을 잡아야 하는 한계로 인해 한국시리즈 1~3차전에서 경찰이 적발한 암표매매는 총 18건뿐이다. 적발돼도 범칙금 16만원만 내면 된다.

1장에 최고 15만원 … 걸려도 벌금 16만원뿐

 잠실야구장을 관리하는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는 전체 2만5000석 중 약 5%인 1500여 장이 현장 암표로 유통된다고 추정한다. 한국시리즈 옐로석(3만5000원) 기준으로 5250여만원에 이른다. 암표가 정가보다 2~3배 비싼 걸 감안하면 한 경기 매출액만 1억원이 넘는 셈이다.

 최근엔 인터넷 암표매매가 오프라인 못지않게 성행하고 있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는 현재 30여 개의 야구 티켓 양도 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카페는 갑작스러운 사정으로 경기장에 못 가 표를 넘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위한 곳이다. 하지만 다수의 암표상들은 ‘양도’로 위장해 암표를 팔고 있다.

 대부분 판매금액을 제시하지 않은 채 글에 연락처와 계좌번호만 적는다. 암표판매가 아닌 것처럼 위장하고 추후 연락해 높은 금액을 제시하기 위해서다. 실제 28일 기자가 카페 글을 보고 연락을 하자 암표상은 옐로석의 2~3배인 7만~10만원의 가격을 불렀다.

 카페 운영진은 암표거래로 의심되는 글을 삭제하거나 신고하지만 아이디를 바꿔가며 게시글을 올리는 것에 일일이 대응하기엔 역부족이다. 이외에도 중고제품 거래 카페나 블로그 등에서도 암표판매가 공공연히 이뤄진다. 이러다 보니 사기피해도 발생한다. 티켓 예매번호를 넘기거나 표를 직접 건네준다고 한 뒤 계좌로 돈만 받고 잠적하는 식이다. 하나의 예매번호를 여러 사람에게 중복으로 팔기도 한다. 지난 6월 서울 강남경찰서는 두산과 LG의 정규리그 경기 6장의 표로 총 19명에게 장당 2만~3만원씩 받고 팔아 57만원을 챙긴 혐의(사기)로 방모(26·여)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온라인 거래 단속 법개정안 국회서 낮잠

 그러나 인터넷 암표 단속은 현장에 비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 2항 4호에선 암표매매행위가 금지된 곳으로 인터넷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지 않다. 송파경찰서 양형석 생활질서계장은 “인터넷상 거래는 계좌추적 등을 통해 실제 거래 현장을 잡아야만 해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은 지난 5월 암표매매 금지 항목에 인터넷 매매를 명시하는 내용의 개정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법안은 현재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근본적으로 암표행위 근절을 위해선 입장권 판매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입장권 예매는 한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예매로만 가능하다. 이로 인해 입장권 예매 때마다 접속지연 현상이 발생했다.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조정훈 주무관은 “암표 판매 근절을 위해선 처벌을 강화 하고 예매 창구를 다양화해야 한다”며 “소액의 수수료를 받고 예매해 주는 합법적 티켓 판매 대행제 도입 등을 KBO 등과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글=이승호·신진 기자
사진=임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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